전국이 떠들썩했던 집배원 복지에 관한 이슈가 잠잠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복지 정책들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노아와 같은 지역 소속 집배원 몇몇이 조기 은퇴를 하는 바람에 노아가 느끼기엔 오히려 전보다 더 업무가 가중된 느낌이었다. 비로소 노아는 업무 강도가 너무 높다는 어느 집배원의 인터뷰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노아는 턱까지 올라오는 점퍼를 올려 채우고 풍경 감상을 할 새도 없이 오토바이를 몰았다. 요즘 노아는 거의 매일 하루 종일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지냈다. 주말에 늘 가던 달 사장네 바에도 발길이 끊겼다. 더 이상 낮 병원에 봉사하러 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함이 도시로 가게 되어 더 이상 달 사장과 셋이 모일 수 없었던 이유가 더 컸다. 함이 일본에서 찍었던 사진을 눈여겨본 어느 돈 많은 사업가가 그에게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고 도시로 불렀다고 한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인사한마디 없이 이곳을 떠났지만 노아는 서운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린 어차피 주말에만 보는 사이였으니까. 하고 노아는 생각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노아는 습관적으로 배달박스에 남은 수량을 확인했다. 오늘도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힘들겠구나. 하고 노아는 한숨을 쉬었다. 잦은 초과근무와 피로 때문에 퇴근하고 베란다에서 하염없이 하토를 기다리는 날이 거의 없어졌다. 그녀는 나를 항상 보고 있으니까 이해해 줄 것이다.라고 노아는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늦은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갔을 때, 낯설게도 우편함에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봉투에는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어느 사진 전시회의 초대장이 들어있었다. 초대장 구석엔 함이 활짝 웃고 있었다. 함께 동봉된 전시회 포스터 속엔 여러 장의 사진 작품이 있었는데 어쩐지 사진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전에 본적 없이 낯선 느낌이었다. 노아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한참이나 이렇게 저렇게 떠들어대던 함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간이 흘렀구나. 노아는 포스터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노아는 전시회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함이 그립거나 보고 싶진 않았지만, 그의 예술은 어떤 끝을 만났는지를 꼭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