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by 가로등 책방

소경의 인생 첫 기억은 유년기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친구 몇몇과 어느 빌라 옥상에서 잡기 놀이를 하던 그들은 어느새 놀이에 질리게 되었다.

“야 이제 그만하자. 나만 술래 하니까 재미없어.”

“무슨 너만 술래를 해. 나도 벌써 세 번이나 했어.”

“난 다섯 번도 넘었어!”

별거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일 때 친구 중 하나가 옥상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어! 학원 선생님이다!”

“어디 어디?”

아이들은 한순간에 고요해지며 전부 친구의 곁으로 달려와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너 학원 다녀?”

“응. 피아노학원 선생님이야.”

“한번 불러보자.”

“그래!”

이내 그들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왜 안 보지?”

“또 불러보자.”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지만 여전히 선생님은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바보!”

“멍청이!”

용기 내서 한 마디씩 내뱉던 아이들 중 하나의 시야에 옥상에 나뒹구는 돌멩이가 들어왔다. 아이는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 아래로 던졌다.

“야 너무 작아서 어디로 갔는지도 안보이잖아.”

“야 그래도 큰 건 위험해!”

누군가는 만류했지만 아이들은 점차 큰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생님도 뭔가를 눈치챘는지 위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잽싸게 난간 안쪽으로 고개를 넣으며 킥킥거렸다.

“흐흐 재밌다.”

“우릴 발견했을까?”

“보자 보자!”

그들은 다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고 이곳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때 소경의 눈에 커다란 돌덩이가 보였다. ‘큰 건 위험해!’라는 친구의 말이 귀에 맴돌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소경은 돌덩이를 쥐었다. 한 손으로는 들기 힘들어 두 손으로 들고 난간 아래로 던졌다.

“선생님!” 친구 중 하나가 소리쳤다.

소경은 킥킥거리며 난간 속에 고개를 숨겼다. 그때 아래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아악!”

난간 아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며 고개를 안으로 집어넣으며 그중 하나가 소리쳤다.

“야 도망쳐!”

그들은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경은 난간을 바라보며 몸이 굳었다. ‘아래를 봐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저지른 일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나 소경의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한참 후에야 뒤쪽에서 누군가 고래고래 소경의 이름을 소리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경은 뒤돌아 도망쳤다.


그날은 분주한 저녁이었다. 소경의 부모님은 몇 차례나 경찰서에 다녀오셨고, 혼자 남겨진 소경의 집 전화기는 연신 울려댔다. 어두워진 집 어딘가에서 선생님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덜컥 감옥에 잡혀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소경을 사로잡았다. 모두가 한 사건의 뒤처리로 분주한데, 정작 사건의 주범인 자신만은 덩그러니 남겨둔 것이 외롭고 무서웠다. 그날 저녁 소경이 애써 잠자리에 들고 날이 밝아 눈을 떴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눈 뜬 그 아침은 사건 당일의 아침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같은 날이 다시 시작되었다. 소경이 경험한 첫 번째, 시간의 속도가 없는, ‘영의 하루’였다.


소경은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는 어제와 같은 말과 행동을 했다. 똑같이 점심을 먹고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다가 한 친구가 사는 빌라 옥상으로 모였다.

한 아이가 소리쳤다.

“어! 학원 선생님이다!”

소경은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질 않았다. 지금이라도 뒤돌아 달려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다리는 의지와 상관없지 난간을 향해 달렸다.

아이들이 하나둘 돌멩이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소경은 두려움과 후회에 휩싸여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의 표정은 마음과 상관없이 웃고 있었다. 소경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커다란 돌덩이를 발견했다. 소경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의지를 막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해 소경은 돌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소경은 두 손으로 돌덩이를 들었고, 그 순간 소경은 도저히 눈을 뜨고 있기 힘들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소경은 만족스러운 듯 돌덩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소경이 난간을 바라보며 얼어있는 순간, 소경은 끊임없이 되뇌었다. ‘아래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반드시 확인해야 해’ ‘내가 저지른 일을 꼭 확인해야 해’ 소경은 그 장면에서 계속해서 소리치며 움직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소경은 뒤를 돌았고, 도망쳤다.


다행히 시간이 되풀이되는 것은 단 한 번이었다. 다시 한번 잠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났을 때 소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이, 그의 표정이, 그의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 소경은 처음으로 본인의 나이보다 하루를 더 살았다. 그날 소경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안타깝지만 그 기도는 들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후회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소경은 영의 하루를 보내야 했고 소경은 영의 하루가 며칠이나 있었는지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 소경은 영의 하루도 자신의 인생이라 여겼다. 영의 하루가 365번을 넘겼을 때, 소경의 나이는 남몰래 한 살 더 많아졌다. 소경의 인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로선 소경의 나이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겪어본 자신으로서는 차마 남들과 동일하게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노아는 면담기록지를 잠시 내려놓고 반쯤 식은 케모마일 차를 한잔 마셨다. 어느새 면담기록지의 절반이 넘겨져 있었다. 창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겪었을 하루를 의사에게 설명하는 일은 창에겐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노아는 창과 함께 영의 하루 속으로 초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눈뜨면 반복되었던 아침부터 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껍데기에 갇혀있던 창과 함께 노아도 갇힌 것이다. 어쩌면 노아는 지금 창이 스스로를 인식했던 방법으로 창을 인식하는 유일한 타인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아는 계속해서 면담기록지를 읽었다.


소경의 첫 연애는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나 착했고 다정했던 소경이었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은 소경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다. 후회할 일은 무수히 많았고 그때마다 소경은 하루 혹은 며칠 혹은 몇 달을 홀로 나이 먹었다. 그럼에도 젊은 날의 아름다운 사랑은 끈기 있게 지속되었고, 약 5년간의 연애 후 소경은 깨달았다. 어느새 소경은 20대의 청춘을 만나기엔 너무 늙어버렸다. 여자 친구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경 자신만은 분명히 알았다. ‘나는 이 꽃다운 청춘에 비해 인생을 너무 오래 살았다.’ 그런 생각은 하루 종일 소경을 괴롭혔다. 여자 친구의 싱그러운 웃음을 볼 때마다 거울 속 자신의 웃음은 주름지고 탄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순수함은 오히려 소경의 속을 비추는 ‘창’ 같았다. 어느 날 소경은 더 이상 사랑이란 감정으로 그녀를 붙잡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경은 소경의 인생을 알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소경은 자신의 비밀을 숨긴 채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는 소경에게 매달려 한참을 울었다. 그날 소경은 어쩌면 이번 영의 하루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되풀이되는 아침을 6개월째 맞이했을 때, 소경은 죽음을 결심했다. 설령 반복되는 하루일지라도 자신에게 매달려 6개월째 울고 있는 여성의 슬픔은 소경에겐 매번 실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째 의지 없이 잠자리에 들었지만, 야속하게도 죽음을 결심하자 그날 저녁 몸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소경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책상 앞으로 갔다. 이전부터 영의 하루를 어떻게든 마쳐보려고 준비해 놨던 수면제 통이 눈에 들어왔다. 소경은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틀어넣었다. 물도 없이 한참을 씹어 수면제를 꾸역꾸역 삼켰다. 기분 나쁜 냄새와 함께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소경은 응급실이었다. 코와 목에 고무호스 같은 것이 들어있어 매우 거북하고 속이 무척이나 쓰렸지만 지옥 같은 하루가 끝났음에 안도했다. 그렇게 소경은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노아는 면담기록지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낮 병원에 있으면서는 따로 면담을 진행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노아는 왠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창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찾아온 그녀를 보며 고작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창은 몇 날을 홀로 늙어가고 있었을까. 창은 어쩌면 흘러넘치는 마음을 차마 수습하지 못해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며칠, 아니 어쩌면 몇 개월을 되풀이되는 하루 속에서 후회하다가 창은 결국 인생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노아는 언젠가 들었던 창의 말이 떠올랐다. ‘끝을 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떤 끝을 상상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지.’ 창은 끝을 보았을까. 창은 그녀의 대답을 듣지도 못하고 ‘어떤 끝’을 볼 기회를 포기한 채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노아는 창이라면 왠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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