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by 가로등 책방

전시회장은 펜션 분위기의 독채 건물이었다. 2층 건물 내부에 방마다 분위기에 맞게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고, 마당까지 사진이 전시되어 그 위는 천막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음악이나 분위기가 꽤나 고급지다고 느껴져 노아는 왠지 위축되었다. 그러나 달 사장은 마냥 신난 듯 보였다. 누구라도 달 사장에게 말을 건다면, ‘사진작가가 내 친구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댈 것만 같았다.

“달 사장님! 노아! 오랜만이네!” 정장을 근사하게 빼입은 함이 반갑게 인사했다. 긴 머리도, 턱수염도 그대로였지만 노아는 함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함. 밖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네! 오랜만일세!” 달 사장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형. 오랜만이야.” 노아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자네는 좁은 마을에 있기 아까운 인재였지. 어때 도시생활은 좀 할 만한가?”

“그럼요. 아시겠지만 제가 좀 도시체질이잖아요.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은걸요.”

“잘됐구먼.” 달 사장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없으니까 노아도 통 가게에 오질 않는다네. 단골 둘을 잃으니 영 장사할 맛이 나질 않아.”

“요즘 좀 바빠서 그렇다니까요.” 노아는 대꾸했다.

“이것 봐. 주말에도 일을 한다는 거짓말이나 한다니까.” 달 사장은 한 바탕 웃었다.

“노아. 내가 없어도 가게에는 좀 놀러 가도록 해. 사장님 안 심심하시게.” 함도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그때 중년의 여성 한 명이 셋에게 다가와 간단히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함에게 뭐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함은 고개를 끄덕이며 둘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이 전시회 첫날이라 이래저래 인사드려야 할 분들이 많네요. 사진구경 먼저 하고 있어요. 이따 또 인사하러 올 테니까.”

함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한 걸음걸이는 여전하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중년의 여성이 함에게 슬쩍 팔짱을 낀 듯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문화생활 좀 즐겨볼까?” 달 사장도 노아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노아는 작게 네 하고 대꾸했다.


전시된 사진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예쁘고 근사해 보였다. 사진마다 역동성과 욕망이 느껴졌고, 왠지 작가가 이것들을 관객들에게 강하게 주입시키려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노아는 어쩐지 사진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간 함이 보여주어 왔던 사진들과는 어쩐지 다른 느낌이었다. 달 사장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시장 2층이 아무래도 메인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1층의 사진들보다 더욱 돋보이게 전시를 해놓았다. 그 한가운데에 유독 다른 사진들과 분위기와 다른 사진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누가보아도 그 사진이 이 전시회의 주인공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것은 하토의 사진이었다. 오래전 함이 일본에서 찍었다던. 노아는 반가움에 사진 앞으로 다가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흐릿한 사진을.


노아와 달 사장이 1층으로 내려오자, 함은 작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함과 머리하나 정도 키 차이가 나는 여기자가 함을 올려다보며 질문했다.

“작가님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개인 전시회까지 열게 되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 나이는 젊은 편이지만, 다른 작가님들 못지않게 긴 무명시절을 거쳤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방향성을 설정하는 시간들이었죠. 그 시간들이 모여 저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개인 전시회란 그 예술세계의 깊이를 나타내는 작은 척도에 불과하죠. 예술가의 나이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시군요. 특별히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요?”

“글쎄요. 보통 겸손히 말하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말해야 할 테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랫동안 고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특히나 예술적인 측면에서는요.”

노아는 왠지 그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전에 알던 함보다도 더욱 거만해 보이기도 했다. 뻔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던 중 노아의 귀를 사로잡는 질문이 들렸다.

“아무래도 2층의 전시가 메인으로 보이는데요?”

“저는 모든 작품을 동일하게 사랑합니다. 다만 대중들의 관심이 조금 더 있었던 작품들을 2층에 모아두었습니다.”

“그중에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진을 말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그럼요. 처음 사람들에게 저라는 예술가를 인식시킨 작품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은인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작품이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나 사진의 주인공이라고 할까요? 찍힌 그 무언가가 조금 가려져 보이기도 하고 흐려져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 일부러 의도하신 건가요?”

“하하.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 사진 스타일이 바뀌기 전이여서 그렇습니다. 흐릿한 사진이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자유로운 해석을 줄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지금의 스타일과는 다르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글쎄요. 그때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예술가로서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감정이나 생각을 의도대로 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시군요. 지금 다시 저 사진을 찍는다면 흐릿한 부분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었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저 사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도대체 찍힌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이 기회에 정체를 밝히시는 것은 어떠세요?”

“오랜 영업 비밀을 밝히는 기분이군요.” 함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것은 고양이였습니다. 하늘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방송국의 PD로 보이는 사람이 노아를 바라보며 입에 손가락을 대어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이야. 노아?” 달 사장은 놀라서 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노아는 황급히 입을 막으며 그곳을 달려 나왔다.


노아는 전시회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시내에 한참을 서있었다. 사람들이 수도 없이 오고 가며 노아의 어깨를 닿을 듯 스친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다. 일정한 끊김이 있어야 할 전화벨 소리도 어쩐지 노아에겐 연속된 단음으로 인식된다. 공기도 바람도 빠르게 노아를 건드리고 지나가 흔들림을 참기 힘들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두운 밤하늘엔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다. 달이 눈을 감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무도 노아를 바라보지 않고 있다. 도시가 주는 과도한 자극이 노아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지만, 영의 하루와는 반대로, 노아의 몸은 움직일 수 있었으나 머릿속은 노아의 것이 아닌 듯 함부로 침범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엉망이 되어가는 생각의 밖에서, 노아는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 10화#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