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봄일춘 Oct 22. 2021

날이 개면 우산은 필요 없다


하하그러마이 할아비가 우리 강아지 데리러 가마.”



밤새 쏟아지던 비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이다. 이번 출장에 우산은 필수품 중 하나다. 어떤 종류의 우산을 챙겨가야 하나 일기예보를 검색한다. ‘서울 오전 한때 비. 광주 맑음. 36도. 폭염경보’      


일기예보는 광주에 도착하면 우산이 필요 없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당장 비가 오니 우산을 가지고 집을 나서야 한다. 내 키의 반 정도 되는 장우산을 가지고 갈까? 간편한 휴대용 우산을 챙겨갈까? 고민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빗줄기가 제법이다. 더 이상의 고민은 의미가 없다. 이번 출장에 지난 4년간 나와 동고동락했던 장우산과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탁월한 선택 덕분에 세찬 비를 피해 무사히 서울역에 도착했다. 나는 뽀송뽀송 부푼 마음으로 KTX에 몸을 실었다. KTX가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빗줄기는 온대 간데없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만이 창을 뚫고 들이쳤다. 살을 에는 듯 한 햇볕을 얇디얇은 가림막 커튼 하나로 막아내며 2시간여를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광주는 날이 쨍쨍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하루 종일 달궈진 뜨거운 지열에 눈도 시리다. 햇볕이 내리쬐는 광주 길거리에 우산을, 그것도 자기 키의 반이나 되는 장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면 그 위용을 마음껏 뽐냈을 내 장우산은 힘없이 내 팔에 매달려 나를 따라다녔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쑥덕공론과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이런 날씨에 웬 우산이람, 그것도 장우산을’, ‘날도 더운데 양산으로 쓰면 딱 이겠는데’ 등등. 뽀송뽀송한 마음이 순식간에 짓무르기 시작한다. 우산은 불필요한 존재를 넘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들고 다니기 불편함에 버스 안에 우산을 두고 내릴까? 가지고 내릴까? 한참을 고민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우산을 들고 온 사람은 나 하나다. 괜히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급히 화장실에 들러 우산을 놓고 나왔다. 원래부터 우산 같은 거는 들고 오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과는 달리 마음은 편치 않다. 그렇게, 우리는 남이 되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화장실에 잠깐 들렀는데 내가 놓고 나온 우산이 그 자리 그대로 놓여있다. 볼일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힐끗힐끗 쳐다봤다.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화장실 주변을 한참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다 결국, 다시 들고 귀갓길에 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비가 자주 내렸다. 하교 시간 즈음에 비가 쏟아지곤 했다. 등교할 때는 상크름하던 날이 이상하게도 하교할 때 즈음 심술을 부렸다. 양쪽 볼에 심술보를 잔뜩 메단 먹구름이 한가득 몰려와 소낙비를 뿌렸다. 거세게 내리는 비를 피해 교실 밖 처마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면 저 멀리 할아버지가 여분의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러 오곤 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 덕분에 비에 젖지 않고 무사히 귀가를 했다. 귀가하는 길에 할아버지가 사주셨던 자장면 맛은 기가 막혔다. 지금껏 숱한 자장면 맛집을 다녀봤지만 그때 먹었던 자장면 맛은 두 번 다시 만나보지 못했다. 그 자장면 맛에 매료되어 하교 시간에 비가 내리길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누군가 하늘에 회색 물감을 잔뜩 뿌려 놓은 아침 등굣길에는 할아버지에게 대놓고 요구를 했다. “할아버지, 이따 비 오면 나 마중 와야 돼” “하하, 그러마. 이 할아비가 우리 강아지 데리러 가마.”          


비 오는 날 할아버지와의 비밀 데이트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산 챙기는데 게으르다. 우산을 챙기고 나오지 않은 날이면 갑작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비 때문에 종종 편의점이나 길에서 우산을 산다. 비를 피하겠다는 마음이 앞서 우산의 품질도 가격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대게 이때 구입하는 우산은 대부분 품질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비쌌다.      


그나마 우산을 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조차도 없는 경우에는 박스나 신문지 등을 머리 위에 쓰고 비를 피해 헐레벌떡 집으로 뛰곤 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날에는 옷이 흠뻑 젖어 우산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곤 한다. 신기한 건 그렇게 급하게 구매한 우산은 음식점, 지하철, 택시 등에 두고 오곤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급하게 산 우산은 잘 잃어버렸다.           




오늘처럼 비 개인 날에는 가끔 우산을 일부러 놓고 오곤 한다. 쓸모를 다했으니, 휴대하고 다니기 불편하니, 더 좋은 게 아직 있으니, 누군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등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으며 화장실에, 지하철에, 식당에 놓고 온다. 가끔은 이런 생각에 건망증이 더해져 의도치 않게 두고 오기도 한다.     


이번 출장에 함께한 장우산. 나의 필요에 의해 함께 동행했는데 필요를 다한 지금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다. 고만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안녕”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 편하겠는데 여간 결정이 쉽지 않다. 그동안 함께한 추억과 더 잘 대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언제가 다시 쓰임이 있을 거라는 기대하는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국을 기준으로 1년 중, 도깨비 쓸개만큼이라도 비나 눈이 오는 날이 270일 정도 된다고 한다. 1년의 4분의 3은 비나 눈이 온다는 얘기다. 통계적으로 화창한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많은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산이 필요한 날이 필요 없는 날보다 더 많다. 인간관계도 날씨와 맞닿아있다. 화창한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많다.  


우유부단한 내 마음이 마치 요즘 나의 인간관계와 닮아있다. 나는 필요의 유무와 정도에 따라 관계의 생명을 결정하는 회사 동료들에게 자주 피로감을 느낀다. 그 피로감과 함께 그들과의 좋았던 추억과 후회가 한데 섞여 관계가 점점 애매모호하다. 페르소나를 십분 발휘해도 작은 찰나에 표정, 시선, 눈빛, 몸짓으로 꼭꼭 숨겨둔 진심이 전해진다.      


최근 코로나 19로 야기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 캠페인은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게 견고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두기와 함께 진심을 숨길 수 있는 거리두기가 이전보다 용이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 삼아 서로를 불편하게 하거나 질식시키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열일 중이다.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린다. 광주 출장에 동행했던 장우산이 나와 함께 출근 준비로 분주하다. 







이전 08화 흔하디 흔한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