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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Jun 25. 2020

자장면, 22세기에는 없다

플라스틱의 역습


“띵동 띵동~”     


 현관문 초인종 벨소리에 평상시와 다르게 아들 녀석이 호들갑이다.      


 “왔다! 엄마, 자장면! 엄마~~~” 

    

 아내는 아들의 성화에 벌써 현관문 앞이다. 아내가 값을 치르는 동안 자장면, 짬뽕, 탕수육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가 순식간에 식탁으로 옮겨졌다. 아들 녀석은 오래간만에 먹을 자장면 생각에 일각이 여삼추다. 자장면 용기를 덮고 있는 랩을 휘뚜루 벗기고 내게 젓가락을 내민다. 나보고 비벼달라는 얘기다. ‘그렇게 자장면이 좋을까?’ 자장면을 맛깔스럽게 비벼 건네니 아귀아귀 먹기 시작한다. 아들은 자장면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비워내고 내 짬뽕을 탐낸다. 갑자기 짬뽕 국물이 당긴다나 뭐래나. 아들내미 덕분에 일소 一笑하며 다섯 식구는 저녁을 맛있게 해치웠다.     



 저녁식사 후, 나는 설거지 담당을 자처했다. 식사가 담겨있던 플라스틱 용기를 물에 휙휙 헹거 재활용 통에 집어넣으면 끝이니 안 할 이유가 없다. 설거지는 3분이 채 안 걸렸다. ‘얼마나 간편한 세상인지’ 설거지까지 마치니 저녁시간이 여유롭다. 아내가 타 준 아이스커피 한잔을 들고 내 방에 들어와 소화도 시킬 겸 TV를 켰다. 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배달시켜 먹거나 포장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도 다시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재활용도 잘 안 되고 그대로 바다로 흘러갑니다.”     


 뉴스 앵커의 차분한 목소리에 반해 뜨악한 내용이 이어졌다. 코로나 19로 인한 일상에서의 과다한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사례가 송출됐다. 재활용되지 않은 플라스틱이 그대로 방치된 해안가와 해수욕장의 장면도 연이어 이어진다. 모래사장에 해안선처럼 보이는 긴 줄은 자세히 보니 줄느런히 쌓여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률이 절반 수준에 그치니 재활용되지 않은 플라스틱이 방치되어 바다로 유입된 것이다.     


 세계에서 해마다 최대 1,4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수가 바닷속 물고기 수보다 더 많을 것이란 경고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수산물과 어류의 경우, 먹이활동을 통해서 체내로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가게 되고 대부분 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단다. 결국 이 쓰레기들이 우리 밥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구조다.      


 국내 배출 쓰레기 중 7~80%를 플라스틱이 차지한다고 한다. 쓰레기 문제는 곧 플라스틱 처리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때 ‘신의 선물’로 주목받던 플라스틱은 이제 ‘신의 저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 생태계를 위협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플라스틱 쓰레기 폐해와 관련된 보도 및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이런 정보를 접할 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도대체 저 많은 쓰레기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분리수거 의무화와 더불어 플라스틱 재활용품을 별도로 배출하고 있는데 이상할 따름이다. 나는 다른 집보다 양을 좀 줄여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고 나름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이런 위안이 무참히 무너지는 거 같아 속상하다.     


 매주 목요일은 우리 아파트 단지 재활용품 배출 날이다. 한주 동안 재활용품을 줄이고 줄여도 2박스 정도 나온다. 내용물보다 포장이 몇 배나 더 큰 대한민국에 살다 보니 별 수 없다. 우리나라가 2015년 기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3위라고 하니 가히 플라스틱 천국이라 하겠다.    

 

 우리 집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 재활용품은 시티로 폼, 비닐봉지, 요구르트 병, 플라스틱 과일박스, 각종 플라스틱 용기, 플라스틱 우유병, 청량음료 병 등등 매주 대동소이하다. 다른 집도 별반 차이가 없다. 우리 집보다 조금 더 배출하고 있다는 느낌 말고는. 그렇게 하루 종일 분리수거된 재활용품은 다음날이면 말끔히 사라진다.      


 산처럼 쌓였던 재활용품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개운한 맛이 있다. 하지만 저런 방송이나 기사 내용을 접하면 도리어 불안감이 좀 더 확실해진다. 이 아파트 숲에서 배출된 엄청난 쓰레기를 받아들일 땅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다. 게다가 이 배출된 쓰레기가 우리 아파트보다도 높게 쌓일 것만 같다는 염려가 날이 갈수록 커진다. 환경부 전수조사 결과, 전국의 쓰레기 산이 235곳에 달한다고 하니 이러한 나의 우려가 이미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내 눈 앞에서 멀어졌던 플라스틱 쓰레기가 부메랑이 되어 재앙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거주불능으로 인해 22세기에는 아들내미가 그토록 좋아하는 자장면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난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던가? ‘내 탓이요!’하는 자기 위안적인 구호 말고 구체적인 실천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저 눈감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는 플라스틱 쓰레기 분리수거에 있다고 해도 더 이상 과언이 아니다.      


 직접 바닷속에 들어가 쓰레기를 치우는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스쿠버다이버 부부의 말이 유독 귓가에 윙윙거리는 요즘이다.     


 “최소한 우리가 지나온 길은 바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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