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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Oct 21. 2021

흔하디 흔한 것


“언제 밥 한 번 먹자!”     

     

이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게다가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내가 그렇듯 상대방도 잘 지내지 못하고 있음이 자명하니 더욱 그렇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동참해야 된다는 의무감까지 더해져 안부를 묻는 것도, '밥 한 번 먹자'는 말도 주저주저하게 된다. 마음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데 관계의 밀도는 점점 낮아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마음의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거 같아 속상하다.          


밥은 단순히 생명 지속을 위해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제공하는 것 그 이상이다. 밥을 함께 하면서 음식과 시간을 함께 나누고 생각과 마음도 함께 나눈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육체적 허기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심리적 허기도 채워준다. 밥 한 끼를 함께 하며 서로 다정한 교감을 나눈다. 따숩고 정겹다.      


진국스러운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좀 더 친해지고 싶어’, ‘더 알고 싶어’의 다름 아니다. 식사를 함께 하며 두런두런 하다 보면 서름서름한 사이에도 온기가 깃든다. 운이 좋으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내가 그렇다. 지금의 아내에게 ‘밥 한 번 먹자’고 했던 데이트 신청이 지난 20년 동안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 앞에는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존재했다. 삶의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기도 하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기도 했다. 혹은 그 길 어디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혹은 나무 그늘 아래든 때때로 구들이 식어 방바닥의 온기가 가신 것처럼 마음의 허기를 느끼곤 한다. 그럴 때 누군가가 해주는 공허한 위로의 말보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더 위로가 되곤 한다. 하물며 그이와 함께 따뜻한 밥 한 끼 잘 먹고 나면 힘이 솟는다. 이리 깎이고 저리 깎인 시린 마음의 허기가 채워진다. 밥 한 끼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          




사방 천지에 먹을 게 넘쳐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혼밥은 여간 곤욕스럽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교내 식당에는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림막이 설치됐고 자리를 띄어서 앉은 지 수개월째다. 만에 하나 나로 인해 대학입시 업무에 차질이 생길까 저어하며 노심초사한지도 수개월째다. 내남없이 애면글면 애쓰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밥 한 번 먹자’고 안부 인사를 전하기가 쉽지 않다. 점심시간에도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 보거나 대화를 나누기가 부담스럽다. 점심시간,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이야기꽃은 대학입시 업무로 쌓인 고단한 마음의 치료제였는데 이제 그럴 수 없어 감질날 수밖에 없다. 한 끼 식사로 배는 채웠지만 서럽고 헛헛하다. 속이 징건하여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의 연속이다.          



당연한 일이 역설적으로 너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요즘,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고은 시인의 「밥」처럼, 밥 한 끼 함께 하며 정서적 교감과 심리적 허기를 마음껏 채울 날을 간망(懇望)한다.    

      

밥 / 고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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