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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Oct 22. 2021

네, 아빠입니다. 그래서요!


아빠랑 노는 거 재미없어!”



 “윤찬아, 아빠랑 놀아줘!”

 “싫어. 아빠랑 노는 거 재미없어!” 


곧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들 녀석이 나를 거부하면서 내뱉는 말이다.


곰곰이 헤아려보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와 놀아달라고 한 적이 없으셨다. 나도 그런 아버지에게 놀아달라고 떼쓴 적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아니어도 내겐 놀 거리가 많았다. 오징어 게임, 딱지치기, 구슬치기,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동네 친구들과 할 수 있는 게 수없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굳이 바쁜 아버지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유년시절의 아버지와 비교했을 때, 난 그래도 신식 아빠다. 아들과 놀아주는 게 아니고 나와 놀아달라고 얘기를 하니. 아들과 ‘놀아 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굉장한 스트레스와 피로가 동반된다. 물론 아들의 눈높이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놀아주는 게 맞다. 어찌 됐든 아들이 까르르까르르 웃을 때마다 나도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여느 아빠가 그렇듯 나도 이런 기쁨으로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아들내미는 매번 ‘아빠랑 노는 건 재미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마도 나와 노는 게 정말로 재미가 없어서 던진 말일 게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런데 이상하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아들의 이 한 마디에 스멀스멀 피로감과 죄책감이 밀려든다. 충분히 못 놀아줘서, 게임에서 잘 져주지 않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공감을 잘 못해줘서. 심지어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자책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나도 좋은 아빠를 꿈꿨다. 그냥 아빠가 아닌 좋은 아빠를. 세상사가 그렇듯 꿈이 꼭 현실이 되지는 않는 거 같다. 아무리 꿈을 꿔도, 아무리 애를 써도 현실은 늘 불만족스럽다. 그렇다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아직 젊다. 여전히 젊은 아빠다. 그래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정리해본다.


정리가 되니 어떤 걸 시작해야 할지 조금은 선명해졌다. 좋은 아빠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니 숨통이 조금은 트였다. 좋은 아빠에서 그냥 아빠로, 그냥 아빠에서 ‘나’를 주어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때마침 직장인 극단 활동과 글쓰기를 시작했다. 요즘 극단 활동과 글쓰기는 좋은 아빠라는 허상의 피난소를 자처하고 있다.


쉬는 법도 모르고 365일 슈퍼마켓을 여신 아버지의 성실함을 지켜보며 자동 적립된 부성(父性)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어 좋다. 스스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호젓한 공간과 시간이 살갑고 고맙다. 




하지만 대학로 무대에 서기 위해 연극 연습을 할 때도, 카페에서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할 때도, 1년에 하루 내게 나만의 휴가를 선사할 때도 일말의 죄책감이 부산물로 주어진다. 여전히 아빠로서 해내길 바라는 생의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은 아빠라는 배역 앞에서 늘 무릎을 꿇는다. 그럼에도 오늘도 꿈을 꾼다. 좋은 아빠가 아닌 그냥 아빠를. 그냥 아빠가 아닌 ‘나’ 자신을. 




‘부자 아빠 No! 친구 같은 아빠 Yes!’,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 ‘아이 성공 비결은 아빠의 역할에 달려있다!’ 아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요되는 요즘이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아빠의 역할은 예전의 아버지 세대와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아빠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된다는 당위성은 변함이 없다. 나는 그 당위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위성을 강요하는 세상에 소심하게 외쳐본다.


“네, 아빠입니다. 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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