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었다.

[22년 만에 대학원생]

by Bara belita

명리학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대학원 진학이 결정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면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나는 대학원을 가야 한다는 굳건한 이유와 확신이 필요했다.

많은 이직과 전직이 생각보다 수월한 편이었고(뒤에 기회가 있다면 풀어볼 이야기들인데 10곳이 넘는 직장을 다녔다), 조직 안에서 적응은 남들보다 반년정도 빨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회사와 상사에게 인정도 꽤나 많이 받았다. 다양한 분야를 배우고 습득할 기회가 많았고 깊지 않은 영역이라 조금 알고도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부러워할 이 효율적인 이점이 내게는 독이었다. 조직 안에서 다음 수준으로 넘어갈 단계를 늘 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Tipping point 직전에 이직이나 전직을 선택하여 피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원하는 만큼 높은 수준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회피했던 시간이 누적되면서 내실 없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대학원 진학이라고 생각했다.


임계점을 넘어서는 단 한 번의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제적인 몰입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키는 것, 이것이 대학원 진학의 굳건한 이유였다. 다만 대학원의 새로운 도전이 또 다른 회피가 될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주변에서 해주는 조언 안에 있는 현실적인 내용은 의심이 되었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명리학선생님의 말에는 조건이 없었다. “잘 될 것이다 “ 그 한마디가 확신이 되어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잡고 있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렇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선택을 했다.

살다 보면 사소한 하나의 경험이 결정적일 때가 많다. 지나치는 풍경, 방송인의 한마디, 책 한 구절, 일상의 풍경,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 머릿속에 탁하고 불이 켜지듯 큰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나한테 명리학선생님의 답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은 선택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끝난다.

첫 시작은 어떤 전공을 선택할 것인가?이었다.

학부를 졸업한 지 22년이 지났고 유전공학전공의 연속성을 가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연구실에서 과연 나를 받아줄 것인가도 문제였다. 보유한 직무경험이 다양성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전문성에서는 미달이었고 융·복합적인 특성으로 수렴되지도 못하였다. 나와 같이 대학생 진로·취업분야 강의와 컨설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상담심리대학원이나 인적자원관리대학원을 선택했다. 사실 진로·취업분야 강의와 컨설팅의 질적 수준은 컨설턴트의 실제 사회생활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진로에 대해 고통스러운 고민의 시간을 이해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무분석을 교육시키는 사람이 실제 회사에서 직무를 수행한 경험이 없다면, 연구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연구원이 되려는 사람에게 역량강화방법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최초 선택지에 올랐던 두 대학원은 의문만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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