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망하지 않았다_9

어느 밤의 배달 후기

by 제인
저도 소주 한 잔 생각나는 저녁이네요….
맛있게 드시고, 조금은 여유로운 저녁 시간 되시길 바래요. ^^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시작으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혼란한 시기였다. 프리랜서인 나 역시 일은 줄고, 어린이집도 셧다운되면서 세 살 아이와 종일 붙어있느라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배려로 서울의 한 호텔에서 혼자만의 1박을 보내게 되었다. 그저 방에서 반신욕을 하고 책만 주구장창 읽어도 마냥 즐거워 낄낄거리다가, 배달로 보쌈에 소주 한 병을 시킨 밤이었다. 리뷰 약속은 하지 않았는데... 도착한 음식과 초코파이 서비스에 식당 사장님이 쓴 사진의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저도 소주 한 잔 생각나는 저녁이네요.

유난히 가슴에 남는 문장. 괜스레 센치해진 나도 조금 긴 리뷰를 남겼다.


배달 음식 시키다 보면 만드는 사람의 존재를 곧잘 잊어버려요. 사장님도, 종업원도, 배달원도, 소주 한 잔 생각나는 밤이 있을 텐데 매일 고생이 많으십니다…(음식 후기 중략).


그러고 나서 편안히 음식을 먹고 있는데, 배달 앱 알림으로... 생각지 못하게 빠른 답장이 올라왔다.


고객님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도 감사한 날이에요. 이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많은 것들을 미루어야 할 때도 있고, 그냥 지나가야 하는 것들도 있고… 다사다난입니다. 고객님과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 아쉽기는 하지만 지구는 둥그니까, 또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봄바람 같은 위로. 감사했습니다. ^__^*


...

당연히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그럼에도,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고, 위로 받는구나...


그렇게 편지 같은 댓글을 받은 그 밤의 소주가, 유난히 달았다.




서른이 넘어가면 살갗이 두꺼워지는지

새로운 단어가 몸에 새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에 쓰는 말이 중요하다.

존재, 봄바람, 감사, 인연, 위로 같은.

나처럼 시니컬한 인간은 주기적으로,

인생 살만하다고 느껴지는 식상한 단어들을 애써서, 굳이, 새기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엔 무자비가 널렸지만

다정과 공감이 더 가까운 곳에 산재해 있음을, 누군가의 손 잡아 본 사람들,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다가온다.

그 가게엔 아직 불이 켜져 있을까.

감사의 편지를,

다시 한번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