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과 겸양 사이
아홉 살 아이가 용돈으로 산 풍선껌을 열심히 씹으며 나를 부른다. ‘엄마, 봐봐요!’ 조그만 입에서 풍선이 쏙 하고 올라오다가 쉽게 터져버리자, 아이는 배시시 웃고 다시 열심히 씹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큰 풍선을 만들면 온 식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며칠 전까지는 매일 줄넘기 실력을 뽐내느라 부모의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이중 뛰기, 교차 뛰기, 펭귄 뛰기… 줄넘기 방법이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그 외에도 달러를 공중에 띄우는 마술, 판넬을 일일이 잘라 만든 거북선, 백 점 맞은 받아쓰기 등 아이의 자랑거리는 끝이 없다. 본인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나이 든 부모를 붙잡고 마술과 태권도를 열심히도 가르친다.
재잘대는 입이 쏙 들어가는 건, 결국 호응에 지친 어른들이 ‘00아, 이제 공부하자!’라고 선언하는 순간이다. 아홉 살 깜냥으로 몸을 사리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이없고 한편으로 귀여워서, 매일 소소한 뽐내기 판을 벌여준다.
나는, 자랑을 자랑스럽게 주고받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타인의 ‘자랑질’이 꼴 보기 싫은 어른이 되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관계망 속의 돈 자랑, 집 자랑, 직위 자랑에 지쳐서다. 영원히 비교 속에 살 것 같아, 최근엔 SNS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도 마음껏 뽐내지 못한다고 느낀다. 포트폴리오 계정을 키워야 하는데 몇 년째 미루고만 있다. 안분지족이 중도를 잃었다. 어디까지가 자랑질이고, 어디까지가 겸양인지 기준점을 잡아야 한다. 프리랜서에게 겸양은 때로 스스로를 가두는 나태한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너보다 잘하는 애들이 천지야. 튀지 마라.’
어린 시절 자주 듣던 말이 뇌리에 박혀서인지, 내 자식도 제 잘난 맛에 살면 어쩌나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육아를 할수록, 아이들조차 오롯이 칭찬받기 힘든 시대라고 느낀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모두 자신만의 자랑거리가 있는 법이다. 그들이 집에서라도, 부모에게라도 마음껏 자랑하고, 박수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나 역시 에세이를 쓰며 좀 더 뻔뻔하고 싶어진다. 언젠가 내 글재주가 늘어 책이라도 내게 된다면… 그땐 정말 귀여운 척, 자랑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