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프면 망한다
남편은 매일 저녁 팔 굽혀 펴기와 가벼운 맨몸운동을 한다. 그리고 꼬박꼬박 유산균, 오메가 3, 비타민B와 C, 아스타잔틴을 챙겨 먹는다. 영양제에 월 10만 원 이상을 지출하면서 ‘이건 생존 비용’이라고 말한다.
신혼 때는 이런 남편이 유난하다고 생각했다. 잔병치레가 많긴 하지만, 아침에 목이 부었다며 즉각 반차를 내고, 굳이 먼 거리의 유명 의사를 찾아다니는 30대 남자가 어디 흔한가. 술도 거의 안 마시고 흡연가도 아닌데 이렇게 골골대니... 살면서 크게 앓은 적이 없었던 나는 앓는 소리하는 그를 매번 놀리고 가끔 심통도 부렸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팬데믹 전후, 우리 부부가 40대로 접어들면서다.
마흔 앓이인지 아니면 2번의 코로나 감염 탓인지, 멀쩡하던 내가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목소리가 마음대로 나오지 않았다. 팬데믹 여파로 고정 프로그램이 크게 줄면서 무기력증도 생겼다. 마침내 코로나가 무렵에는 말 그대로 날벼락같은 사건을 겪으며 PTSD 진단을 받았고, 혼술마저 늘었다.
급격히 무너진 체력과 정신적 공황 상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 두세 시간씩 걸으며 버텼는데, 그 몇 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회복된 이후에는 의욕적으로 PT를 받고 러닝도 했지만, 매번 부상으로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꼬리뼈에 금이 갔고, 독감과 폐렴으로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살면서 이토록 진퇴양난의 순간을 겪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곁에서, 기다란 자작나무 같던 남편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집에서 별 힘들어 보이지 않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매일 몸을 챙기더니, 환절기마다 꼬박 걸리던 목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고, 코어근육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다 자란 남자의 어깨도 넓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럴 수가... 자칫하다가는 최약체라 비웃던 그보다 내가 먼저 갈 것 같다. 이렇게 죽을 수 없는데. 툭툭 털고 재미있게 살아야 하는데. 뒤늦게나마 안정의 기쁨을 누리면서, 오래 자잘하게 행복하고 싶다고!
... 아직 나는 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자주 아프면 망할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지, 병상에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어린이의 경이로움'이나 '엄마의 책임' 따위 클리셰를, 이제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곱 번 일어나면 여덟 번 넘어지는 나라도... 툴툴대며 다시 길을 나선다. 눈뜨자마자 유산균을 삼키고 무기력한 몸을 일으켜 스쿼트를 한다. 실천보다 변명이 앞서는 내게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는다. 필요는 필요 없다. 그냥 한다.
그리하여 작년 늦가을, 0.5초 열혈 클릭으로 수영 강습에 등록했다. 운동에 필사적일 때마다 부상을 겪고 의기소침해졌기에, 이번에는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느긋해지려 애쓰고 있다. 물을 싫어하던 내가 어느새 어쩌다 평생 수영인을 꿈꾸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 가소로운 일이다.
게으른 기질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편도체부터 살살 구슬려 뇌를 속이기로 한다. 일단, 화려한 새 수영복을 사서 마음 건강부터 챙겨야겠다. 재역전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