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선택 사이
10년 전, 나는 자칭 '늙은 유망주'였다. 입시와 등단을 준비하는 10~20대 사이에서 유일한 30대.
한예종에 가고 싶었다. 본업이 아니라 서사 창작으로. 그때 나는 이야기를 쓰는 것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막연히 30대가 되면 경험치도, 쓰고 싶은 소재도 깊어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나름 적절한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성우로 일하며 창작물도 만들어 내는, ‘저작권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니던 언론 대학원의 여름 방학을 틈타 주 2회, 하루 6시간씩 소설 창작 수업을 들었다. 매일 100km씩 운전하면서, 본업 외 비어 있는 모든 시간에 글을 썼다. 항상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장애물을 넘고 나면 가끔 ‘작품 속 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20여 명의 문우들 중에서 수업마다 한 두 작품에만 주어지는 A+를 매주 받았다. 남편에게 ‘내가 작가님(스승)도 인정한 유망주’라며 시건방 떨었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쉽게 소설 쓰기를 포기할 줄, 그때의 나는 정말 몰랐다.
결혼하고 3년 만의 임신.
처음은 아니었다. 허니문에서 얻은 아이를 10주 무렵, 허망하게 보낸 적이 있었다. 일은 유난히 몰리는데 입덧이 멈추지 않아 짜증 부리다가, 막상 유산되었을 때의 후회는 얼마나 깊었던가... 그러나 재임신은 쉽지 않았고, 남편의 퇴사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삶의 뒷순위가 되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딩크 부부로 늙을 줄 알았는데, 서른 중반 나이에 다시 아이가 찾아와 준 것이다.
글을 쓰며 살고 싶은 만큼 엄마도 되고 싶었을까. 모르겠다. 그저 유산의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담담히 예술전문사 진학을 포기하고 본업과 출산에 전념했다. 남편도 1년 넘게 무직 상태로 준비한 자격증을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 커리어를 살려 이직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 과거의 열정이 무색하리만큼... 우리는 이 선택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당시 스승은 내가 쓴 습작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 글’이라고 합평했다. 천부적 달필은 아닐지라도, 좋은 이야기의 기본을 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인간의 못남을 사랑하고, 그래서 인간에게 무해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아이에게 무.해.한. 엄마도 되고 싶다.
포기의 능동태는 선택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돌고 돌아 다시 삶의 서사가 시작되는 법이다. 포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허락받았으니 그렇게 밑진 장사도 아닐 것이다.
해리포터를 읽고 '아브라카타브라!'를 수십 번 외치는 아이를 보며 깔깔댄다.
진짜 이야기는 종이 위가 아니라, 내 삶의 풍경 속에 있음을 안다.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까지... 나는 망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