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망하지 않았다_last

by 제인


오래전,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라는 제목의 산문집에 꽂힌 적이 있다. 책을 쓴 시인처럼 나 역시 엄마로, 프리랜서로, 강사로, 가사 노동자로 살면서, 명확한 단어로 나를 규정할 수 없는 ‘파편 같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쉽게 욱할 때, 퍼포먼스가 안 나올 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알면서 나쁜 습관을 반복할 때, 나는 내가 싫다. 아이와 함께 웃을 때, 적확한 연기를 할 때, 몰입했을 때, 규칙적으로 운동할 때, 나는 내가 좋다. 무료하다면서 막상 바쁘면 귀찮아할 때, 돈이 좋다면서 돈 안 되는 일만 할 때, 목숨보다 귀한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 엄마의 역할(교육, 끼니, 라이딩, 소음…)에 숨 막혀 할 때, 나는 내가 이상하다. 복합적 감정들이 해체되었다, 조립되었다 하며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한때 나는 내가 가장 ‘중요’했지만 딱히 ‘사랑’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내가 그닥 중요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꽤 좋아한다. 최소한 남은 삶을 누릴 만하다고 느낀다. 이기적이고, 내향적이고, 회의론자였던 내가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나서야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못남을 받아들이자, 타인의 못남도 받아들여졌다.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여전히 생각과 감정의 무한루프에서 자주 허우적댄다. 부정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집을 나서고, 운동을 하고, 무언가를 자꾸 시도한다. 목표나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독이 되는 생각과, 행위와,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다. 우물쭈물하면 원치 않던 일이나 관계들이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래서 이제는 내 삶의 목적이나 존재 이유 같은 것을 따져 묻지 않는다. 오늘 운동 안 하면 내일 망한다, 와인 마시면 내일 망한다,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산다. 이도 저도 싫으면, 그냥 잔다. 중심 잘 잡고, 어깨에 힘 빼고, 행위의 선순환에 집중한다.

그렇게 나를 좀 좋아해 주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