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절망과 희망 사이
밤 10시 전후 잠들어 오전 5시쯤 일어난다. 더 일찍 눈뜨는 날이 많지만 7시간 수면을 채우려 애쓰고 있다.
작년에는 새벽부터 걷기나 러닝, 독서와 필사, 저널링을 다 하다가, 올해는 잠을 더 자고 가벼운 요가와 모닝페이지로 아침을 깨운다. 적막하고 어둡지만, 평온한 새벽. 이 새벽의 루틴으로 나는 코로나 블루를 버텼고, PTSD를 버텼고, 앞으로 더 막막해질 40대도 버텨나갈 예정이다.
한때, 새벽은 내게 지옥이었다.
약을 먹고 억지로 잠들었다가도 한두 시간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눈을 떴다. 부교감신경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 매일 밤 걸으러 나가서 죽음의 공포를 떨쳐냈다. 매일 반려인에게, 의사에게, 신에게 나 좀 살려달라고 빌었다. 돌아보면,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게 어찌나 감사한 일인지. 세월이 약이 되고 가족이 힘이 되어 고통은 사그라들고, 살기 위해 쌓았던 그때의 루틴들만이 남았다. 이제 새벽은 오롯이 나 자신을 스캔하는 시간. 웃음도, 아픔도, 기쁨도, 불안도 없이 그저 고요하다.
"엄마, 그거 알아요? 새벽은 ‘너무 늦은 밤’이기도 하고 ‘아주 이른 아침’이기도 해요!"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불 꺼진 침대 위에서 발견하듯 속삭인 말이 다이어리 앞장에 쓰여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불현듯 떠올린 건지는 몰라도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엄마에게 전해준 다정한 문장을 새벽마다 음미한다. 어떻게든 밤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질척거리던 젊은 시절의 나는 사라졌다. 지금의 나를 살리는 건 ‘너무 늦은 밤’이 아니라 ‘아주 이른 아침’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눈 뜨는 이 새벽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