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을 배우는 시간_아이로부터
세 살 준이는 매일 울었다.
자다가도 울고, 간식 안 준다고 울고, 아빠가 회사 간다고 울고, 엄마가 화장실 문만 닫고 들어가도 울었다. 남자는 언제부터 울지 않게 되는 걸까?
아이가 커서도 잘 우는 사람이길 바란다. 때와 장소는 있겠지만 소중한 사람 앞에서, 아니면 혼자서라도 잘 울고, 잘 웃기를. 감동해서도 울고, 아파서도 울고, 공감해서도 울 수 있는, 그만큼 다정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아들아, 혹시 어리석은 친구가 마음 약한 놈이라 놀려도 신경 쓰지 마. 어차피 걔네는 인생을 몰라.
다섯 살 준이는 괴물 그리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아이가 송곳이 뾰족한 외눈박이 괴물을 그렸다.
“오, 준아. 그림 정말 멋있네. 엄마도 이렇게 눈이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
그러자 아이가 “왜요 엄마?”하고 물었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나름 진지하게 답했다.
“한쪽 눈은 좋은 것만 보고, 한 쪽 눈은 나쁜 것만 보는데, 엄마는 좋은 것만 보고 싶어서. 눈이 하나인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러자 아이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음… 하지만 엄마. 눈이 하나면, 다시는 두 개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아이는 괴물의 외눈 옆에 눈 하나를, 예쁘게 더 그려 넣었다. 나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벌써 아홉 살이 된 준이는 지금도 자주 눈물을 보인다.
그러나 대성통곡하지는 않고, 태연한 척 참으려고 애쓴다. 여전히 그림 그리기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만화카페 가는 걸 훨씬 좋아한다. 때로 솜사탕 같은 말도 건넨다. 주방 정리하다 문제집 채점해 주러 가면 “이왕 온 거, 한번 안아주고 가셔요.” 하고, 자기 전에는 엄마의 이불까지 펼쳐놓으며 “우리 얘기나 좀 하다가 잘까요?” 한다. 나는 내가 아는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와 아이의 굿나잇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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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매일 주고받는 언어와 표정들이 더할 수 없이 귀하다. 그를 한없이 안아 준다. 맛있는 음식을 내어준다. 나의 마음이 닿고 또 닿아 아이의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상상을 한다. 하루하루가 아깝고, 다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