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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26. 2022

그리다 만 그림_

예..세이_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45도 각도로 방바닥을 바라본 지 30분째였다.


'이제 움직여도 돼?'


'응~'


오빠는 가자미눈으로도 거울을 통해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바라봐지는 나를 그렸다.


'뭐야~ 내 입이 왜 이렇게 튀어나왔어~ '



으레 그림이라면 대상자를 만족시킬 요소를 가미할 법도 한데 솔직하기 그지없던 그 그림을 나는 미워했다. 오빠는 어설피 웃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육지로 나갔던 큰 오빠와는 달리 공부와 멀어 보이던 둘째 오빠는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시내에서 오빠를 좋아하는 언니들을 마주치는 걸 즐겼다. '니가 그 오빠 동생이냐?' 나는 오빠 동생이라는 이유로 빵빠레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곤 했다. 정작 집에서 오빠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간혹 집에 와 있을 때면 아침 등굣길 자전거 앞자리에 올라타곤 했다.



어렴풋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티격태격하던 셋째 오빠와는 달리 어른스럽던 둘째 오빠는 어린 시절 내 우상이었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자전거는 오빠의 거친 숨소리마저 따듯한 온기로 여겨져 어린 나는 노곤한 행복을 느끼곤 했다.






두 오빠가 도시로 나가 자취생활을 했다. 방학을 맞아 엄마를 따라 오빠 집을 향하던 내 눈은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도시를 탐했다. 그것도 잠시 날이 어둑해지고 장르가 바뀌었다. 나의 우상인 둘째 오빠는 처참하게 울고 있었다. 콧물과 침을 채 삼킬 사이 없이 소리 없는 흘러내림이었다. 큰 오빠는 도시에서 동생들을 지켜내야 할 문지기처럼 위엄 있는 모습으로 두 살 아래 동생을 벌했다. 그들의 모습에 엄마도 소리 죽여 울었고, 그곳에 있던 나 역시 시공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자는 척 울다 진짜 잠이 들었다.







엄마는 방학 동안 학원을 다녀보라며 나를 두고 내려갔다. 시골에서도 다니지 않던 학원을 도시에서 다니라니.. 촌티가 걸음걸음 떨어지고 주눅이 쩍쩍 들러붙은 발걸음으로 학원을 갔다. 새하얀 무리 안에 시커먼 존재가 들어섰으나, 이내 호기심은 무관심으로 변하고 걔 중 소외되어 보이는 나를 챙기는 친구를 만났다. 꽤나 밝았던 아이는 나를 재밌어했고, 집에 데려가지까지 했다. 아이의 엄마는 슬며시도 아닌 적나라하게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나를 읽어 해석했다.






'오빠가 짜장면 사줄까?'


아르바이트하고 일당을 받을 때면 오빠는 짜장면을 사줬다. 먹고선 집 근처 오락실에 들렀다. 오빠는 스트리트파이터, 축구. 나는 보글보글, 테트리스, 비행기.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던 오빠는 늘 따듯하게 웃어줬다. 서글서글한 미소로 안심시켜 주곤 했다. '괜찮해~'






둘째 오빠는 내게 꿈같은 기억으로 머물러있다. 다시금 이렇게 오빠의 기억을 불러들인 건 이번 친정에서 발견한 그림들이다. 내 입을 툭 튀어나오게 그려 나를 삐지게 했던 오빠의 간절함들이 어딘가를 헤매다 고향에 찾아들어 봉인되어 있었다.





'그려야 산다지 않소.'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떠올랐다.

오빠들의 도시의 뒷골목 자취방에서 처참히 흘러내리던 눈물이 그림을 몰래 배우다 걸려서라는 걸.

오빠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다니며 미술부에 놀러 갔다가 만난 벽에 걸린 그림. 그곳에 적힌 오빠의 이름.

그림이 밥을 벌어주지 못한 시절.

공부 길이 아닌 그리는 길에 들어서고 싶던 오빠의 긴 그림자와 한숨이 운전하던 자전거.




오빠가 도시로 가서 몰래 배운 그림.

그리다 만 그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순간 행복한 것을.

살아있음이 감사한 것을.

알아가는 지금의 내게.



오빠의 그리다 만 그림은.

쓰라리다.



그림 뒤에 적힌 오빠의 글귀.






정작 나에게도 가을은 오는가!
예컨대
언제 이곳을 들어선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빠 그림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 그림에 필사를 더했다. 


나를 보듬기 시작하자 그 곁에 부서진 오빠들의 잔해들이 보인다.

하나씩 주워 모은다.

그들에게도 뜨겁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안녕을 바라는 누군가 있음을.

천천히 전해야겠다.







#진지특기생

#내게도오빠가있어

#키다리외삼촌

#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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