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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Oct 22. 2021

내 앞의 생이 끝나갈 때_

파티복 입고 오세요




그런 노래가 있다.

답하고 싶은.


지인들 부모님 부고 소식이 부쩍 늘어났다.

내게 장례는 지인과의 친분에 따라 조의금만 내느냐 조문을 가느냐가 다르다. 상심이 클 지인을 염려하면서도 조문에 참석할 검은색 옷이 있나 머릿속에 떠올려야 했다. 고인을 향한 연민보다는 지인과의 의리가 앞섰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수척해진 지인이 안타까워 눈시울을 붉히다 짧은 위로의 말과 가벼운 포옹을 나눈다.


먼저 자리 잡은 일행과 밥을 먹으며, 고인에 대한 애도를 마치고 지인이 마음 추스르는 동안 기다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과 술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느라 북적거리는 장례식장은 시끄러워야 망자가 이승에 미련을 남기지 않고 마음 편히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를 모르는 이들이 모여 앉아 저들끼리 이야기 나누다 가는 걸 보면 외로울 것 같아 센티해진 마음으로 로비에 나갔다.


가을도 아닌데 어디서 이 많은 국화꽃은 피어나는 걸까. 나는 좋아하는 국화꽃으로 만들어진 화환들을 바라보고 섰다. 내가 알만할 정도의 회사명을 두른 화환을 중심으로 국화꽃 축제를 연상시켰다. 그 곁을 지나던 사람이 멈춰서 화환에 걸린 회사, 동호회 이름을 둘러보며 말하길


"와! 이 집 자식은 출세했네!"


나는 뒤를 돌아 이름 모를 고인들의 장례 모습을 바라봤다. 화환이 넘쳐나 두줄로 세워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넓게 펼쳐도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으로 고인의 삶과 자식의 경제적 위치가 한눈에 보기 쉽게 펼쳐져있었다. 국화꽃이 죄가 아니련만, 지나가는 이가 남긴 말로 국화꽃은 출세한 자식의 우쭐한 권력이 되었다.


그 후로 찾은 장례식장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리무진으로 고인을 모시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효의 크기를 입증하듯이 집착하는 언쟁이 오갔다. 나는 장례에 참여하면 할수록 누구를 위한 시간인지 혼란스러웠고, 마치 내가 고인인 것처럼 화가 났다.


태어날 때는 아무런 준비를 못 하지만 죽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화 '헤이즐'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살아있는 순간에 자신의 장례식을 진행한다.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들이 서로에게 꼭 전해야 하는 메시지들로 슬펐던 영화지만 더불어 아름답기도 했다. 감성적인 나는 영화에 심취해 남편을 향해 내가 꿈꾸는 장례를 재잘거렸다. '나는 가족과 친구만 함께했으면 좋겠어. 내가 좋아하던 음악이 흐르고, 즐겨 읽던 책과 사진첩을 보면서 함께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면 좋을 것 같아..'






 <<초대장>>


 나다운 이야기가 바람이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 옛이야기 나누며

 웃고 울다 가세요.

 (춤추고 노래 부르면 좋겠어요)

 

  준비물: 함께 했던 추억들


  복장: 자신만의 아름다움





자신의 장례식을 떠올리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은 살아남은 이에게 생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는지, 그 대답을 찾아가며 후회 없는 세월을 보내라는 신해철의 노래에 답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게 언제 마주칠지 모를 생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지 않을까.







  << 신해철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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