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ㅂ ㅏ ㄹ ㅐ ㅁ Oct 22. 2021

어둠속에서 빛나는 건 십자가 뿐이었다_




십자가 수만큼 서점이 생긴다면 어떨까.



스물한 살 쯤이다. 버스정류장과 멀리 떨어진 오르막길에 자리한 집에서 막내 오빠와 자취를 했다. 사글세. 이름마저 서글픈 사글세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 집세를 미리 내고 들어가 사는 주거형태다. 1층은 주인, 2층은 세입자가 주로 살게 되는데, 나는 그 점이 참 좋았다. 2층이 전부인 집의 최고층에 살면 야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꽃 같은 청춘이었지만 표정은 세상을 다 살아 미련 없는 노인의 표정으로 낮 동안 서툰 세상살이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골목들을 지나 익숙한 문 앞에 섰다. 열쇠를 꽂아 돌리면 요란한 철컥 소리가 났다. 삐거덕거리는 문소리를 줄이기 위해 경첩 쪽으로 문을 살며시 밀어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가기 전, 주변을 둘러봤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 오로지 교회의 빨간 십자가뿐이었다. 기도는 하지 않았다. 방법을 몰라서이기도 했고, 다리에 힘이 풀릴까 두려워서였다.




© dvbarrantes, 출처 Unsplash




지금 내가 사는 곳의 최고층은 13층이다. 그곳에 오를 일은 없지만 겨울이 가까워지면 그때 보았던 빨간 십자가들이 떠오른다. 그 시절 그건 막막한 어둠 속에서 길잡이나 위로가 되어주는 따뜻함이었다.



나는 생각해 본다.

십자가 수만큼 많은 서점이 있다면 어떨까?






며칠 전 남편과 치킨에 맥주 한 잔을 하며 나눈 이야기다. 맥주 한 잔에 아득한 눈빛으로 남편을 향해 물었다.


"책방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남편은 마시려던 맥주를 내려두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답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 아닐까?"


나는 남편을 바라봤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그럼 책은 누가 읽어야 할까?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일까, 접할 수 없는 사람일까?

그럼 서점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나는 독백에 가까운 질문을 남긴 채 남편에게 숨겨진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늘 존재한다. 깊은 골목에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처럼 책을 건네고 싶지만, 현실에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이미 책을 많이 접하고 있는 사람에게 한껏 분위기를 낸 서점을 차리고 싶다고.




© meganmarkham, 출처 Unsplash



우리의 대화는 아이들의 소란으로 중단되었고, 나는 '진짜 서점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딘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삼켰다.


그 시절 어둠 속 빛이 되어준 십자가는 여전히 누군가의 밤을 지켜내고 있을까_







누군가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건 어쩌면 물질적인 도움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삶에 대한 욕망을 다시 불어넣는 일인지도 모른다.


홍지재 /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중





#밤을밝히는것들 #서점이있어야할곳 #나다운이야기 #The바램

작가의 이전글 나를 어른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_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