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쯤이다. 버스정류장과 멀리 떨어진 오르막길에 자리한 집에서 막내 오빠와 자취를 했다. 사글세. 이름마저 서글픈 사글세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 집세를 미리 내고 들어가 사는 주거형태다. 1층은 주인, 2층은 세입자가 주로 살게 되는데, 나는 그 점이 참 좋았다. 2층이 전부인 집의 최고층에 살면 야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꽃 같은 청춘이었지만 표정은 세상을 다 살아 미련 없는 노인의 표정으로 낮 동안 서툰 세상살이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골목들을 지나 익숙한 문 앞에 섰다. 열쇠를 꽂아 돌리면 요란한 철컥 소리가 났다. 삐거덕거리는 문소리를 줄이기 위해 경첩 쪽으로 문을 살며시 밀어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가기 전, 주변을 둘러봤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 오로지 교회의 빨간 십자가뿐이었다. 기도는 하지 않았다. 방법을 몰라서이기도 했고, 다리에 힘이 풀릴까 두려워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