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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Oct 22. 2021

무엇이 되는 것만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_

무엇을 베고 잠드는가


섬을 떠나와 스무 살에 들어간 대학을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빚내서 다니기엔 나와 맞지 않는 공부였다.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은 채 단시간에 취득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간호 학원을 등록하고 병원으로 실습을 나갔다.


아침 출근시간 직장인들이 익숙한 표정들로 각자 자신이 속한 건물로 들어간다. 실습 병원 직원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심 부러웠다. '나도 저런 익숙한 표정으로 당당한 직장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간호 학원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나는 그들의 피곤함마저 질투하곤 했다.


"일찍 왔네~?"


아침에 본 직장인들과 달리 활기찬 걸음걸이로 다가온 간호사 선생님의 인사였다. 실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끝까지 긴장하던 나는 먼저 다가와 인사해 준 선생님 도움으로 하루하루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언제부턴가 출근길 간호사 선생님 머리가 젖어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젖은 머리 때문에 그녀의 어깨는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선생님, 왜 머리를 안 말리고 오세요?"



"수영하고 머리까지 말리고 오면 지각하니까." 그녀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병원 근무하기도 힘드실 텐데, 아침마다 수영까지 하시는 거예요?"



"수영할 때가 젤 재밌어!"

별것 아닌 듯 말하는 그녀는 멋지기로 작성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당당한 직장인'처럼 보였다.


실습이 끝나갈 무렵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찬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간호사가 꿈이었죠?"

그녀의 시선은 아주 잠깐 나를 비켜나갔다가 다시 웃음을 머금고 돌아왔다.


"아니! 돈 벌려고 하는 거야."

나는 솔직한 답변과 눅눅해진 그녀의 어깨를 쳐다봤다.


"집에 보내고 남은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그걸로 만족해! 게다가 나만의 공간도 생겼거든!"

병원 근처 작고 저렴한 자취방 이야기였다.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보지 못한 그녀의 자취방을 떠올릴 수 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 자취방은 책이랑 침낭밖에 없어.


베개가 책이고, 책들은 책꽂이 없이 쌓아뒀어.


그게 내 꿈이었거든! "



무엇이 되는 것만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작게 내가 바라는 세계를 채워가다 보면 그곳이 꿈이 아닐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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