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ㅂ ㅏ ㄹ ㅐ ㅁ Apr 19. 2022

나비 그림자




비 온 후 남아있던 벚꽃잎이 날렸다. 그 모습이 마치 나비 같아 사진에 담으려 렌즈로만 바라봤다.

앞서가던 딸이 말하기 전까지 계속 휴대폰으로 사진만 찍었다. 어디 출품할 거처럼.


'엄마~ 나비다~'

'엄마, 나비는 작은데도 그림자가 있어~'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하얀 나비가 날고 있다. 직선이 아니다. 사람으로 빗댄다면 술 취한 걸음이다. 춤이다.

나비 아래 딱 제 크기만 한 그림자도 따라 춤춘다. 작은데도 그림자가 있는 게 신기했던 딸과 나비의 그림자를 처음 본 나. 휴대폰을 집어넣고 함께 걸었다. 술 취한 걸음으로 이쪽저쪽.






어릴 적 학교에서 줄 맞춰 걸으라고 하는 게 그렇게나 어려웠다. 그냥 앞사람에 맞추면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렵냐며 선생님께 머리 콩을 자주 받았다.


너무 바짝 붙으면 앞사람의 신발 뒤꿈치를 밟아 친구의 신발이 벗겨졌고, 너무 늦으면 내 신발이 뒤따라오는 친구에게 밟혔다. 오와 열을 맞추느라 한 눈 팔 사이가 없었다. 앞과 옆을 보고 팔을 얼마큼 올려야 하는지 최선을 다했다.


아침에 일어나 짧게 따라 쓴 시 필사 앞에서 줄 맞춰 쓰고 싶지 않은 날이다. 그렇다고 어떤 의도가 있지도 않다. 그냥 펜이 가는 데로 따라가며 적는다. 흐름에 맡긴 필사는 정해진 틀을 벗어난 나를 멋져 보이게 한다.


꽃의 선언 앞에서 나다운 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교단에 올라 선서를 하는 학년 대표처럼.



류시화 꽃의 선언 시필사


꽃의 선언_류시화


모든 꽃은 발끝으로 선다

다른 꽃보다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옷자락 잡아당기는 어둠보다 높이 서기 위해

무채색의 세상에

자기 가슴 물들인 색으로

저항하기 위해

꽃으로 핀다는 것은

톱니 모양 잎사귀의 손을 뻗어

불확실한 운명 너머로

생을 던지는 자기 혁명 같은 것

모든 꽃은 발끝으로 선다

마음 자락 끌어내리는

절망보다 높이 서기 위해

다른 꽃들 향해 얼굴 들고

자기 선언을 하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밑 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