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ㅂ ㅏ ㄹ ㅐ ㅁ
May 18. 2022
아주 작은 움직임은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저 제자리 꿈틀임인데도
한참 지나 보면 저 너머다
나는 딱 지렁이를 닮아있다
더우면 헥헥거리고,
지나가는 자전거를 피하지 못해 휙 밟히고,
비 오면 신이 나서 춤춰대니 말이다.
그런데도 굳이 저 너머로 가겠다며 땅 위에 오른다.
지렁이에겐 그 길이 '광장'일 테지?
광장을 지난다는 건 굉장한 일
'저곳의 땅을 내 비옥하게 하리라!'
는 거창한 목표 아닌
저곳으로 여행하리라는 기분 좋은 설렘과 떨림
이 느린 꿈틀거림을 춤처럼 봐주는 이들이 있다면
기꺼이 '왕 꿈틀이 젤리'하나 내어드릴 수 있는 배포를 가진 내가 되는 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아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아프다.
그리고
지렁이는 안 밟아도 꿈틀거리고 있다
비가 내린다
오늘은 지렁이 춤추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