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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Sep 18. 2021

시어머니와 스타벅스로 갔다_

시어머니는 어디 가고 소녀만 남았다





그녀는 마을을 대표하는 며느리였다.



키 167센티에 53킬로.

시골에서 보기 드문 큰 키에 피부도 하얗다. 장남에게 시집와 떡 하니 아들 둘이나 낳았다. 시어머니에 시할머니까지 어른들을 잘 모셨으며, 마을 어른들께도 인정받는 마을을 대표하는 며느리였다. 그렇게 열심히 부양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 믿었고, 인정까지 받으니 그녀는 힘이 들어도 자부심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어느새 며느리가 생겼다.



“어머님~ 저 커피숍 쿠폰 선물 받은 게 있는데 카페 가실래요?~”

나는 무료 쿠폰이 있다는 것에 힘을 주어 넌지시 그녀에게 물었다. 어머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하셨다.




“나랑 카페 갈라고? 그래 가보자~”

몸이 아파 며느리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병마 앞에 우울해하기만도 눈치가 보였던 터다. 며느리가 하자는 걸 해야 한다고 여긴 듯 귀찮은 몸을 이끌고 나섰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다.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낮게 자리 잡은 커피 향의 그윽함이 우리를 맞이했다. 아이들 등교와 등원을 마친 시간이라 카페엔 자리가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그중 가장 조용할 것 같은 곳으로 자리를 정하고 나는 카페모카, 그녀는 캐모마일 티를 주문했다.


“여는 자리도 없네...”

주변을 살피는 어머님 눈빛이 예리하다.


“네~ 요즘 학기 시작이라 아이들 반 모임 때문에 자리가 없나 봐요~”

나는 카페 안에 모인 모든 엄마들을 보호라도 하는 양 앞서서 두둔했다. 부디 그다음 말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남편들은 일하고 여자들은 여(여기) 다 있네”

어머님은 결국 뱉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고 만다. 결혼 10년쯤 되니 어머님이 하신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노하우가 생겼다. 싫은 소리는 답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에는 그 말을 하는 배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님 말로부터 나를 지키고 신랑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생존본능이란 게 꼭 무인도에서만 발휘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님은 저 말을 왜 하실까?'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가? 아들은 돈 벌고 그 돈을 편하게 쓰는 듯한 나를 향한 뼈 있는 말일까?.. 불필요한 생각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날 어머님의 말은 누구를 향한 비난이 아닌 듯 보였다. 힘없이 의자에 기댄 그녀는 뿌리 뽑힌 들꽃 같았다.

가을 추수가 끝난 들녘의 스산함을 닮아있다. 친정엄마를 향한 것과는 다른 연민이다. 삶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간 뒤 병든 자신을 되돌아보는 듯하였다. 


나는 당당했던 어머님의 모습이 그리웠다. 그랬다면 조금 전 멘트에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무슨 저런 말을 며느리 앞에서 하셔? 진짜 시(시댁)는 시라니까!’라며 친구에게 전화로 숨 쉬지 않고 쏟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그녀를 미워하기엔 뿌리가 너무 말라있었다. 10년 동안 고부 사이로 지내며 쌓아 올린 미운 정 고운 정이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


“어머님. 어머님은 고민 있으면 누구한테 털어놓으세요?”

나는 어머님을 빤히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어머님은 훅 들어온 질문에 나를 한참 바라보신다.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당황한 듯 내려왔다.


“뭐 그런 걸 남한테 말하노..”

멋쩍은 표정으로 답한 후 내 시선을 피해 카페 구석구석을 살핀다. 어머님은 고민을 말하면 흠이 된다고 여겼다. 공유하지 못한 수많은 걱정들과 치열하게 싸우다 점점 더 외로워졌다. 그 외로움은 고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눈치 빠른 나는 그녀의 코끝이 빨개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다.



“어머님~ 딸 키우다 아들 키우니 또 달라요~

어휴.. 어머님은 어떻게 아들 둘을 그렇게 잘 키우셨어요?”

나는 얼굴 가득 생기를 끌어모아 마음에 영 없지만은 않았던 말을 낭랑하게 꺼냈다. 어머님의 기분전환은 다른 거 필요 없다. 두 아들과 열심히 살아낸 그녀의 삶을 칭찬하는 것이다.


어머님의 눈이 반짝인다. 됐다.

그녀는 과거 어느 시간으로 회귀한 듯 천장을 한번 바라본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는지 자신에게 말하는지 모를 말을 이어갔다.


“갸들이 착했지... 나 때는 일하느라 아이들 크는 거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지금처럼 아빠들이 아이들하고 노는 건 상상도 못 하고..”

“그래도 남들 하는 건 다 해줬데이~”

“내 세대가 낀 세대라 제일 불쌍해~ 어른들 모시느라 고생하고 자식들한테 대접 못 받고..”

“너희들이 제일 좋은 세대지..”

그렇게 말한 후 한 김 식은 카모마일을 호로록 마셨다.


그녀는 믿었다. 조신하게 살림 잘하고, 아이 잘 키우고, 나 하나 희생으로 가족이 행복하다면 기꺼이 한 생을 바쳐도 후회 없다고_ 모두가 그러했기에..



나는 믿는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고_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이엔 큰 강이 있다. 그 강 건너에서 그녀는 내게 소리친다.


“너는 좋겠다. 신랑 잘 만나서~”


그 말에는 부러움과 자신이 키운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있다. 들으면 썩 기분이 좋진 않지만 그 말을 뚫고 들여다보면 그녀 역시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 강을 건너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은 듯 뒤돌아 서 있지만 스치는 바람에 날아든 낙엽에 뒤 돌아본다.


우리는 나이를 떠나 꽃이고 싶어 한다. 끊임없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 옛날 그녀가 마을에서 최고의 며느리로 인정받고 예쁨 받았던 시절처럼.


그날 카페에서 나는 어머님이 아닌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한 여인과 차를 마셨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지나온 시간을 잘 살아낸 것에 대한 칭찬일지 모른다.


지나온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_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_나태주 11월





더욱 당신을 이해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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