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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Mar 21. 2023

지퍼백에 바퀴를 달아_

어디로든_

허름한 가방 하나가 기나긴 방황의 시작이었다. 여행 가방의 화사함이나 돌돌 굴러가는 네 개의 바퀴 달린 캐리어도 아니었다. 찢기지 않길 바라던 커다란 지퍼백이었다.


그 가방 하나로 '여행자'와 '방랑자'가 구별되었다.

가방의 주인이면서도 버스터미널에서 놓인 가방은 제 것이 아니길 바랐다. 곁에 놓인 바퀴 달린 가방엔 돌아갈 곳이 있는 이의 자유로움이 달려있었다. 힘겹게 들어 올리는 가방과 돌돌 굴러가는 가방 사이에 여행과 방황이 놓였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집이기도 했고, 마음이 뉠 곳이기도 했다.

내 한 몸 뉠 곳이라면 어디든 좋겠다 했지만 친절한 벗의 집도, 빛이 들지 않던 고시원도 몸은 뉘었으나 마음이 눕질 못했다.

사는 것이 여행이길 바랐으나 끊임없는 고행과 방황이었다.


돌아갈 곳만 있다면 이 모든 게 여행이 되는 것일까?

옥탑방을 얻어 들어간 날 지퍼백이 제대로 자신의 짐을 풀었다.

더 이상 단 하나의 가방으로 옮겨지는 삶을 살지 않겠노라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밤을 보며 다짐했다. 옥탑의 밤바람은 내 몫이었고, 어딘가를 갔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고단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잠들어도 되었고, 답답할 제면 창을 열어 바람을 허락할 수 있었다. 사는 게 여행이 되어갔다.

   지

  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방랑자의 마음이 들어찼다.

왜 돌아올 곳이 있는데도 마음은 눕지 못하는 것일까?


수없이 리셋을 눌렀으나 이내 먹통이 되고 말았다.

에러_ 에라이_


마음이 편히 누우려면 이 좁은 몸 안에 방황하는 이야기들의 요동을 내놓아야 했다.


마음이 새장을 열어 이야기가 날아가도록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도록_

다음엔 어설피 아는 곳으로 새어 들어가도록_
나를 떠난 이야기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내 안에 까불고 있었구나.

이야기가 날아간 자리에 만보기에 찍힌 걸음만큼의 생이 들어온다.
바퀴가 네 개 달린 가방도 하나 있다.

방랑 시인 김삿갓처럼 여행을 만나고 되돌아온다.

지퍼백을 제 것이 아닌 듯 멀리 둔 채 공허한 눈빛을 한 방랑자를 보니

저 지퍼백에 바퀴를 달아주고 싶다.


저기...

그대도 방랑 시인이라오_

삿갓을 하나 쓰시오_쓰시오_



        
            
                
                
            
        
    

삿갓을 하나 쓰시오_

쓰시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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