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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Nov 22. 2023

책을 닮은 사람들

책을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며 살지 못했다. 

읽은 책의 권수가 많지 않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작가 이름이나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책이 없었다

벌어서 오빠들 학비 보태느라 바쁜 부모님께 문제집이 아닌 책을 사달라고 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단지 새 학기 받아 든 도덕 책과 국어책을 재미있게 읽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도덕에 사로잡혀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다 

책 향을 풍기는 몇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 가끔 만나는 친척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끓여주는 수제비는 맛있었다. 수제비 냄비받침은 책이었다. 생각해 보면 책을 깔고 앉은 수제비를 먹으며 책을 읽는 언니의 모습이 더 맛있었다. 언니 책엔 김치 국물 자국이 나있었고 나는 그마저도 근사해 보였다.


어제 딸아이와 점심을 먹으며 친척 언니를 떠올렸다. 아이는 학교에서 빌려 온 책이 궁금한지 식탁에 앉아 펼쳤다.  "우리 책 읽으면서 밥 먹을래?"라는 물음에 "응!" 답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 틈에 나도 마저 읽고 싶던 책을 읽으며 밥을 먹었다. 뭔지 모를 평온함과 아이와 연대하는 기분에 그 시절 수제비를 먹으며 느꼈던 언니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나란해졌다. 밥과 순간은 퍽이나 맛있었다. 





대학시절을 한 학기만 보내고 가정 형편과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자퇴를 했다. 하지만 소속감이 주는 소중함을 곧 느끼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던 나는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실습하던 곳에서 한 간호사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의 아침 출근 머리는 늘 젖어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늘 바빴지만 힘찼다. 아침 수영을 마치고 출근을 하던 그녀는 자취를 하고 있었다. 퇴근 후 어떻게 쉬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바쁘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방을 말로 그려주었다. 


"내 방에는 뭐가 없어. 

그냥 밥솥과 냉장고. 그리고 책!"

마지막 책이라는 단어는 짧고 강하게 뱉어졌다. 그녀는 이어 말했다. 

"책도 그냥 책장 없이 탑처럼 쌓아뒀어. 퇴근하고 가면 책 몇 권을 베개 높이로 하고, 침낭에 들어가서 책 읽어. 그때가 제일 행복해" 


가끔 그녀가 떠오른다. 

지금쯤 어떤 방에서 지내고 있을지 못내 아쉬운 인연이다. 






가스 충전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다. 

하필 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추위는 무르익어 손 살갗이 사포질 한 나무처럼 거슬거렸다. 


오전 오후로 나뉜 아르바이트에서 나는 오후파트였다. 정오 무렵 오전 파트와 교대하면서 알게 된 언니가 있었다.  같은 시간대 일을 하지 않아 나누는 대화가 적었지만 짧은 여운들이 모이고 모여 두터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 없이 언니는 쪽지 한 장을 내게 건네며 오늘이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함께 나눈 시간과 비례하지 않게 나는 언니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언니의 쪽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남은 오후 일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구겨진 마음으로 접힌 쪽지를 펼쳤다. 


<한 남자가 눈이 가득 쌓인 언덕을 올라간다. 모든 것이 새하얗게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길이 아닐지도 모르는 길을 푹푹 빠지는 발을 들어가며 걷는다. 그곳엔 눈 밟는 소리와 남자의 숨소리와 함께 뿜어지는 입김이 전부다. 남자가 조금 전 지나온 곳에 발자국만 남는다. 하지만 이내 남자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함께 뒤따르던 발자국마저 사라진 채다. 되돌아갈 수도 없다. 어디가 길인지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길 따위는 거기 있지 않았다.>



언니가 준 쪽지는 잦은 방랑으로 거처를 옮기다 잃어버렸다. 기억되는 글의 잔상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을 뿐이다. 어느 책이었는지 아니면 언니가 글을 쓴 건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추운 시절. 

손이 얼고 발이 얼고 얼굴은 굳어 마음마저 얼어가던 시기에 어쩌면 언니의 마음도 얼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언니는 마음마저 얼어가던 나를 읽고 다른 이의 글을 통해 이야기를 전했다. 사적인 편지글 하나 없는 그 쪽지에 차마 멈추지도 못한 채 얼어버린 얼굴에 뜨거운 물줄기를 흘리며 마저 걸었다.  


시간이 지나 고단함이 밀려들거나 누군가 추워 보일 때면 그 쪽지가 생각난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책과 연결된 인연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친구와 언니 두 명이 살고 있는 자취방이었다. 방황하는 나를 불러들였다.  그렇게 세 자매와 막냇동생의 친구인 나까지 네 명의 여자가 지내게 되었다.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야간 알바를 했다. 언니와 친구가 학교, 직장에 나가면 집에 들어가 언니가 빌려다 둔 책을 읽게 되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 '향수' 소설책을 제대로 처음 만난 날이었다.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다음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빠졌다.

'향수'는 스토리와 사람의 심리를 집요하게 쫓아 들어가는 쫀쫀함에 눈을 뗄 수 없었고, '연금술사'는 마법 같은 이야기가 이유 없이 나를 달랬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은 세상이 잠시나마 달리 보였다. 그렇게 책은 의도 없이 다가와 의미가 되어갔다. 


어느 날 친구의 둘째 언니가 책을 든 내게 무심한 듯 물었다.

"00이 요즘 힘들구나~" 

얼빠진 표정에 입으로는 헤헤거렸다. 

나도 알지 못한 마음을 언니에게 들켰다. 들키고 나서야 내가 아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니의 알아줌은 내게 있어 책을 마주하는 자세가 되었다. 


나는 힘들 때 책을 찾고 있었다. 


그 후 책은 내게 안식처가 되었다. 

가끔은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벗이 되었다.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수업 시간 교과서에 새까만 밑줄만 그어대던 남자다. 그는 맹랑하면서 센 척하던 나를 좋아했다. 눈치 없는 남자는 그냥 그 모습이 좋았더란다. 그래서 외로워졌다. 웃음 끝을 읽지 못한 남자였다.


밝은 사람이다. 

추우면 옷을 단단히 여밀 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밝은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후진 생각에 점점 그를 향해 웃을 때면 얼굴이 어색하게 주춤거렸다. 실제로 그는 추위를 잘 몰랐다. 추위는 타지만 춥게 놓여 본 적이 없었노라 해맑게 웃는 사람이었다. 


밑줄 긋는 나를 좋아해 줬다.  

혼자서 꽁꽁 언 마음을 녹일 요량으로 책이라는 장작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와 가까이서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안의 분위기를 위해 밝은 책만 골라 읽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책 읽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당당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도 곁에서 얇은 책을 읽어갔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는 관계에서 힘들 때면 '책을 읽을 때가 되었나 봐' 한다. 


그가 내가 쓴 글을 읽는다. 

요란하게 응원한다. 은근히 데워지는 기대감이 그의 얼굴에 서린다. 나는 그 응원이 참 좋다가 그 기대감이 퍽 두렵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가족을 사랑한다. 

돈도 좋아한다. 

그 돈으로 책을 사는 건 더 좋아한다. 흔히 책을 좋아하면 돈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오해를 밟아 버린다.


이제는 힘들 때가 아니어도 책과 함께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다 나다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라서 쓸 수 있는 형태의 일렁임이 장작 같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거리에서 손을 뻗어 온기를 받아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장작 같은 사람들을 만나 책이라는 벗을 사귀었듯.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장작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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