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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Nov 24. 2023

그를(글을) 사랑한 여자

초등학교. 

수업 중 독후감 쓰는 법을 배웠다. 좋은 독후감은 자신의 생각을 많이 적는 거라고 했다.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들로만 가득 찬 독후감을 써냈다. 독서일기라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글에 선생님은 '그래 이렇게 쓰는 거야'라며 칭찬하셨다. 


독후감 대회가 열렸다. 선생님은 내게 독후감을 써오라 하셨다. 대회 따위 상관없이 나는 충실하게 책을 읽고 떠오르는 솔직한 생각을 적었다. 몇 시간 후, 교무실에 불려 갔다. 선생님은 다른 친구의 이름이 적힌 원고를 내미시며 "이거 이름 바꿔서 써와!" 말 잘 듣는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했다. 이렇게 쓰는 글과 저렇게 쓰는 글 사이는 참 멀었나 보다. 결국 이름 바뀐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다.


찢었다. 






매일매일 일기장 검사를 받았다. 선생님은 일기장에 첨부 글을 써주셨다. 다른 친구의 일기장에 가득 쓰인 선생님 답글이 부러웠다. 열심히 일기를 썼다. 별거 없는 일상이었지만 의미를 붙여가며 솔직한 일기를 썼다. 하필 특정 아이를 편애하는 선생님에 대한 불만의 일기였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일기를 썼을까? 

선생님은 불쾌해하셨고, 아무 글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 일기에서 솔직함은 사라졌다. 







중학교. 

특별한 재주가 없는 나는 한산한 문예부에 친구와 놀기 위해 들어갔다. 자유로울 줄 알았던 특별활동 시간은 정말 문학을 위한 시간이었다. 망했구나 했다.

어느 날 운동장에 나가 놀고 싶다고 하니 그 마음을 시로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뭐든 열심히 하는 나는 또 운동장을 향한 마음을 시 비스름하게 적었다. 

 "시 써본 적 있어? 엄청 나가서 놀고 싶었구나~"

흡족한 표정의 그 말을 당시엔 신뢰하지 않았다. 


아쉽다.






고등학교.

글쓰기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나갈 대상자가 없단다. 서기였던 내게 나가보라 하셨다. 학교를 빠질 수 있는 기회라 알겠다고 했다. 

그날 주제는 '시골'이었다. 시골에 대해 떠오르는 것을 글로 적어야 했다. 많은 아이들이 저마다 자리 잡고 글을 썼다. 

심사하시는 분이 좋아하는 글을 쓸까? 시골에 대해 느끼는 나의 진짜 마음을 쓸까? 

고민했다. 

첫 번째 글을 쓰려니 도무지 써지지 않아서 시골을 아프게 썼다. 발목 잡힌 꿈들이 서로 뒤엉켜 상처 주고 망가져가며 빛을 잃어가는 삶에 관해서였다. 아팠지만 알았으면 했다. 시골에 대한 환상과 기대에 대해 소리치고 싶었다. 내 부모의 삶이었다.

상을 받았다.  


기쁘지 않았다. 








섬에서 육지로 가방 하나 들고 부모에게서 독립했다. 스무 살이었지만 세상 나이로는 7살도 되지 않은 촌뜨기였다. 전부 새로 시작된 생활. 친구, 학교, 아르바이트 사장님, 아르바이트생 그 모든 관계에서 솔직한 마음을 말로 꺼낸다는 건 쉽지 않았다. 


부모와 섬으로부터의 분리는 내 안의 다른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작이었다. 나는 '해님'이라 불리며 밝게 지냈다. 내 안에 이렇게나 눈부신 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소중해져 가는 이들을 만나면서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표현에 서툴러 편지를 썼다. 

말로 나오지 않은 표현들이 글로는 차고 넘쳤다. 넘치지 않으려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 편지는 나와 그들을 이어주었다.


지금까지_








나는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사랑한다.

어느새 글로 나를 표현하고 있다. 혹여, 마음이 질척이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다가가지 못하는 말을 글로는 잘도 재잘거렸다.


사물이 글로 떠돌았다. 그 글을 어서 종이에 적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건 싫었다. 내 글은 유년시절 거부당한 기억으로 스스로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래서 글을 의심한다.


 '언행일치' 해야 하듯 나는 '서행 일치?' 해야 할 것 같아 글과 내가 일치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불편함이 싫어 글을 적은 후 글과 나를 비교한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인가_ 


나는 글을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즐겁다. 글은 흩어진 마음들을 한데 긁어모아주었다. 긁어 들어온 마음들은 너덜너덜한 조각이었지만 하나하나 털어 짜 맞추면 나를 볼 수 있게 했다. 


나는 거울이나 타인에게 비친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 글에 비친 나를 믿게 되었다. 






싸이월드가 활성화될 때다. 한 친구가 


'너는 좋겠다. 재밌게 지내서!'라는 말을 했다. 


내 글을 보며 자신은 초라하게 느껴졌다는 그 말에 한동안 아무 글도 쓸 수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사진들과 짧은 글뿐이었다. 내 안의 추위는 그 짧은 글 어느 점 하나에 숨기거나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저 행복해 보였나 보다.

평소 은유법이나 반어법을 좋아했던 나였다. 마음을 글에 숨기고 반대로 써두니 누가 무슨 수로 알겠냐 싶었지만, 내심 누군가는 그 글에서 나를 찾아내주기를 바랐다. 

그 간절함은 거꾸로 친구를 외롭게 했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인생을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두려웠다.






나다운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마음이다.

쉼 없이 불을 지피며 마음이 추워지지 않도록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추위와 닮아있다면 기꺼이 자리 내어 함께 불을 쬐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게 추운 이야기라면 더욱 감추기 바쁘다. 


어색하기 싫어서, 불편해서, 약해 보여서, 우울해 보여서. 


사실 내가 추웠던 건 그럴까 봐 마음을 숨겨서였다. 핫팩 들고 쫓아와 안아 줄 벗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서다. 불편하고 약해 보이지만 '힘들다',  '외롭다'라는 글을 쓰면서 나는 울고, 웃을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 쓰고 있다. 

그 끄적거림이 나를 나로서 바로 서게 만든다.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

생을 누리게 만든다.

나를 채우고 넘친 잔이 흘러가 어딘가에 스미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큰 자만인지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게 글은 그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사랑은 전염된다. 이런 전염병이라면 나라에서 인증해 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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