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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19. 2022

내 경력단절에 엄마가 미안할 필요 없어


"나~ 취업했어~!"

지인의 기쁨과 피곤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기쁨은 육아에서 조금 벗어날 시간을 얻었다는 것과 무릎 나온 바지를 하루 종일 입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위해 색조화장을 사고 구두를 사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얻었다.


"역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야 돼~"

사회생활에 스며든 지인은 가끔 집에만 있는 엄마들을 가엾이 여기기도 했다.

누군가의 당당함은 상대에겐 초라함이 된다. 그 기분은 사실 지인이 준 것도 아니었다. 내 안에서 자라는 '사회인으로서의 쓸모'에 관한 무력감이었다.


"나도 직장 좀 알아봐야겠어~"

수많은 고민 끝에 남들도 해내는 걸 나는 못하겠냐 싶어 뱉은 말이었다.


"친정 가까워? 누가 애들 봐줄 사람 있어?"

되묻는 말들이었다.


"나는 친정엄마가 봐주니까 그나마 이렇게 하는 거지~ 아니었으면 못했다니깐. 진짜 친정은 가깝고 봐야 해"

덧붙는 말이었다.


"..........."

할 말이 없는 말이었다.


나는 자동차로 5시간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하는 이젠 육지화된 내 시골집을 떠올린다. 펭귄처럼 뒤뚱 걷는 엄마의 걸음을 떠올린다. 이 나이까지 열심히 자식 걱정하는 그분을 떠올리며 원망했다. 마치 나의 경력단절이 엄마의 책임인 것처럼.. 섬에서 나를 낳은 엄마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너는 꼭 도시로 가~ 엄마처럼 살지 말고!"


엄마가 늘 하던 말이다. 시골에서 오빠 셋 뒷바라지하기에도 벅찼을 텐데 막내딸까지 공부를 시키니 아빠는 물론 마을 사람들도 엄마를 악바리로 여겼다.


하지만 그 말은 엄마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 말처럼 도시로 왔고 엄마와 다르게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며 경력이 단절되었다. 엄마는 집에 있더라도 우울하게 있지 말고 가꾸라 말한다. 내심 딸이 다시 일자리를 얻길 바랐다. 가정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모든 바람들은 그녀가 바라던 것들이었다.


몇 달 전 운 좋게 4시간 일할 수 있는 곳에 취업을 했다. 엄마는 딸이 다시 단정하게 옷을 입고 색조화장을 바른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딸의 또각또각 발소리 따라 엄마의 못다 핀 꿈과 딸을 향한 염원들이 뒤따라 또각거렸다.


나는 멀리 있어서 내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엄마를 원망했던 그 순간들이 부끄러웠다. 자신을 펼치기보다 자식이 펼쳐지는 것을 행복과 성공으로 여겼던 그녀들의 삶.

그리고 오늘 이 문장을 만나 훗날 내 딸에게 어떻게 할지도 떠올려 본다.







가정을 가진 여자가 일을 갖기 위해서
딴 여자를 하나 희생시켜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느낌은 매우 맥 빠지고
낭패스러운 것이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체험한 여자이기에
감수해야 했던 온갖 억울한 차별 대우를
딸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려는 어머니들의
진지한 노력과 간절한 소망에 의해
여성들의 지위가 더디지만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202p>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필사 / 필사가 좋다 / 읽고 쓰고 긋다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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