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던 비
예고 없던 비였다.
예고가 없던 탓에
준비가 없었다.
걸음을 빨리하는 이들
모자를 뒤집어쓴 이들
건물 아래 멈춰 비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이들
이들 사이로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사거리 긴 신호등에 걸려
비 한 방울 젖지 않는
차 안에 앉아
꼬들한 몸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눅눅해져 가는
여자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학원에서 나온 모양이다.
곁에선 아이들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찾아와
잽싸게 껴안아 자리를 뜬다.
그 잠깐 사이 또 여자아이 혼자다.
여자아이 목덜미 뒤로 모자가 있다.
'아이야, 그 모자를 쓰고 뛰어갈래?'
창 너머 내 바람이 네게 전해진 걸까.
여자아이는 모자를 뒤집어쓴다.
'그래, 비 조금 맞아도 괜찮아'
여자아이는 뛰어나가려다 금세
우산행렬이 가득한 거리를 보곤
다시 모자를 벗은 채다.
신호등이 바뀌고
여자아이가 머문 건물을 뒤로한 채
나는 나아가고
아이는 작아져갔다.
문
득
다음에 내 아이들에게 우산을 가져다줄 때면
우산을 여럿 챙겨가야지 했다가.
번
뜩
다음에 내 아이들에게 갈 때면
우산 없이 모자를 쓰고 뛰어야겠다.
세상에 비는 꼭 우산만이 가려주는 게 아님을
비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를
곁에 우산 없이 머뭇거리는 아이와 함께
우리 모두 미친 듯 달리도록
젖어서 무거운 건 솜이고
젖어서 자라는 건 꽃이다.
내 어른이 되니
해줄 거라 곤 너희가 꽃이라는 걸
들려주는 것뿐
아쉽게도 알려주는 건
자신이 없다.
곁에서 이상한 아줌마가 비 맞고 뛰거든
따라 뛰렴
사람들 눈엔 이상한 어른만 보일 거야
걱정 마
이미 쫌 이상한 사람이라
자신은 낭만이라 여기며 달리고 있을 테니
그러니
행운을 기다리지 말고
네가 행복으로 만들렴
참 방귀 같은 소리지만
퍽 애틋함의 소리란다.
젖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울창한 숲이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