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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27. 2022

예고 없던 비

예고 없던 비

예고 없던 비였다.

예고가 없던 탓에

준비가 없었다.


걸음을 빨리하는 이들

모자를 뒤집어쓴 이들

건물 아래 멈춰 비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이들


이들 사이로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사거리 긴 신호등에 걸려

비 한 방울 젖지 않는

차 안에 앉아

꼬들한 몸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눅눅해져 가는

여자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학원에서 나온 모양이다.

곁에선 아이들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찾아와

잽싸게 껴안아 자리를 뜬다.


그 잠깐 사이 또 여자아이 혼자다.

여자아이 목덜미 뒤로 모자가 있다.


'아이야, 그 모자를 쓰고 뛰어갈래?'


창 너머 내 바람이 네게 전해진 걸까.

여자아이는 모자를 뒤집어쓴다.


'그래, 비 조금 맞아도 괜찮아'


여자아이는 뛰어나가려다 금세

우산행렬이 가득한 거리를 보곤

다시 모자를 벗은 채다.


신호등이 바뀌고

여자아이가 머문 건물을 뒤로한 채

나는 나아가고

아이는 작아져갔다.


다음에 내 아이들에게 우산을 가져다줄 때면

우산을 여럿 챙겨가야지 했다가.


다음에 내 아이들에게 갈 때면

우산 없이 모자를 쓰고 뛰어야겠다.


세상에 비는 꼭 우산만이 가려주는 게 아님을

비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를

곁에 우산 없이 머뭇거리는 아이와 함께

우리 모두 미친 듯 달리도록


젖어서 무거운 건 솜이고

젖어서 자라는 건 꽃이다.


내 어른이 되니

해줄 거라 곤 너희가 꽃이라는 걸

들려주는 것뿐

아쉽게도 알려주는 건

자신이 없다.


곁에서 이상한 아줌마가 비 맞고 뛰거든

따라 뛰렴

사람들 눈엔 이상한 어른만 보일 거야


걱정 마

이미 쫌 이상한 사람이라

자신은 낭만이라 여기며 달리고 있을 테니


그러니

행운을 기다리지 말고

네가 행복으로 만들렴


참 방귀 같은 소리지만

퍽 애틋함의 소리란다.


젖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울창한 숲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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