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전략적 공간 모델
앞서 그 동안 살펴본 세계의 미래지향적 오피스 사례를 분석해 그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치와 방향성들을 살펴봤는데요. 이번에는 그 부분들이 실제 공간에서 어떤 형태로 구현되는지 다섯 가지 공간 모델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이러한 공간 모델은 앞서 다뤘던 사례들에서 도출한 전략적 공간 운영 방식인 동시에, 실제 설계나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도 적용 가능한 ‘프레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근무의 확산은 이제 사무실을 본사 하나로 고정해 두지 않습니다. 본사는 협업과 문화 형성의 중심(허브)으로 남고, 업무의 밀도와 집중이 필요한 공간은 외부 공유오피스나 거점오피스(스포크)로 분산됩니다.
이 구조를 잘 활용한 사례로는 Cisco의 스마트 워크스페이스가 있습니다. 실시간 좌석 예약, 센서 기반의 인원 분산 시스템, 거점 오피스 간의 동기화된 사용자 경험이 그것이죠.
공간은 유동적이되, 경험은 일관성 있게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업무가 유연해졌다면 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프로젝트 단위’로 사람을 엮는 시대이기 때문에, 공간도 자연스럽게 예상치 못한 만남과 연결을 유도해야 합니다.
중앙 아트리움, 계단형 라운지, 싱글 플로어의 개방형 구조는 단순히 넓게 보이기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의도된 동선과 시야를 통해 다양한 팀들이 연결되고, 조직의 소통 속도를 높이는 도구입니다.
Microsoft, NVIDIA, PwC 등이 이 구조를 매우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협업의 효율을 높이는 공간 설계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직무에 따라, 업무 상황에 따라 협업보다 집중과 몰입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복잡한 설계나 데이터 분석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은 소음, 조명, 공기질 같은 요소에 민감합니다.
JP모건의 270 파크 애비뉴는 직원 개개인의 조도·온도·공기 선호도를 학습해 맞춤 환경을 제공하고, Deloitte의 The Edge는 앱 기반으로 좌석과 환경을 통합 제어합니다.
이러한 공간은 단지 고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컨디션을 인식하고 조정하는 스마트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폐쇄적으로 개인을 분리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실질적으로 개인의 몰입도를 최적화, 극대화할 수 있느냐의 관점으로 1인 공간을 접근하고 있는 것이죠.
웰니스 룸, 리커버리 존, 방음 부스 같은 공간 옵션은 단순 복지 공간이 아니라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특수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채용도, 퇴사도, 협업도 모두 공간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갈수록 공간의 기능적 역할보다 메시지적 역할이 중요해지는 추세입니다. 때문에 조직이 지향하는 정체성을 담고, 내부 구성원과 외부 방문객 모두에게 ‘우리는 어떤 회사인가’를 체감시키는 공간 또한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PwC의 익스피리언스 센터는 회의실만이 아닌 브랜드 갤러리, 공동 창작 공간, 카페, 미디어 공간까지 통합된 복합 플랫폼으로 운영됩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고객과 직원이 함께 프로젝트를 설계하거나, 새로운 서비스 개념을 실험하기도 하죠.
고객에게도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자사의 혁신 의지와 실제 변화 모습을 구현하면서 브랜드의 미래 방향성을 비주얼과 행위, 프로그램을 통해 느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브랜딩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꼭 외부에 보이는 공간이 아니라도, 이러한 공간의 브랜딩 기능은 점차 파편화되고 흩어지기 쉬운 업무환경, 상황 속에서 단순한 소속감이 아닌, 브랜드에 몰입할 수 있는 감각적 경험의 통로가 됩니다.
탄소 감축, 에너지 절약은 선택이 아니라 운영 전략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영역 전반에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러한 이슈들은 공간 잔략에서도 유효합니다.
구글의 Bay View 캠퍼스는 지열·태양광 기반의 에너지 시스템을, 마이크로소프트는 레드먼드 캠퍼스를 전기와 친환경 소재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JP모건의 270 파크 애비뉴는 ‘올 일렉트릭 오피스’로 설계되어, 실제 탄소배출 제로를 실현했습니다.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운영의 목적과 환경 전략이 공간에 녹아 있는 방식입니다. 최첨단 기술을 적용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만, 현실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모든 건축과 공간 구현 과정에서 이러한 고민은 이제 배제할 수 없는 영역이 되고 있습니다.
건물의 생애주기와 총비용을 고려한 자원 설계, 사용 단계의 데이터 기반 탄소 추적은 앞으로 필수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앞서 소개한 오피스 트렌드가 공간적으로 어떻게 설계되고 운영되는가를 다섯 가지 모델로 정리해보았습니다.
각 모델은 어느 하나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는 복수의 모델이 혼합된 형태로 구현됩니다.따라서 각 조직은 자신의 규모, 문화, 업무 특성에 맞게 이 모델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우리 조직에 가장 잘 맞는 오피스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용 등 현실적 측면에서 저러한 모델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더라도 해당 모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 의도한 효과 등을 목적으로 공간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간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이면서도, 조직의 전략을 시각화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가 공간을 바꾸는 일은, 곧 조직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