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시간 논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SNS를 하면서 종종 출근시간 논쟁을 보곤 한다. 출근시간이 9시라면, 우리는 9시에 출근하면 되는가, 또는 그 전에 출근해서 9시에 근무를 시작해야 하는가.
이 논쟁은 ‘제 멋대로’인 요즘 세대들을 지적하는 대표적인 이슈로 여겨진다. 9시 정각에 출근하는 행태 하나를 두고도 요즘 세대들은 ‘옳고 그름과 상관 없이 자기 손해는 조금도 참지 않는다’, ‘사회적 약속을 제 멋대로 해석한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예의가 없다’ 등 다양한 문제 제기가 펼쳐진다.
9시 전에 출근해야 한다는 기성세대들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는 하루 8시간 근무하기로 근로계약이 되어 있고, 이는 8시간을 온전히 업무에 쓰겠다는 규칙이다. 9시에 이미 근무 준비가 완료 되어야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실질적으로 일이 이뤄진다.
9시에 출근하면 된다는 젊은 세대들의 논리는 이렇다. 애초에 ‘출근 시간’으로 9시가 규정되어 있으니, 그 시간만 지키면 된다. 나는 회사와 8시간 근무하기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내 시간 중 8시간을 회사에 제공한다는 의미다.
들어보면 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입장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9시까지만 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무환경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시각이다.
사무가구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납품실적 촬영을 자주 다녔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된 2010년대 초반에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납품실적 촬영을 하면서 아이러니한 장면을 자주 봤다. 휴게공간을 으리으리하게 조성해 놨는데, 정작 쉬는 사람이 없었다. 휴게실에서 쉬고 있으면 일 안 하고 노는 것처럼 보일까 부담이 됐던 것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장면들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인식이 바뀌었고, 지식 노동자에게 휴게공간은 재충전, 창의적 영감의 기회,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등 다양한 효과를 제공하는 중요한 전략 공간이 됐다.
지금은 오히려 근무 중 휴식과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이 권장되는 시대다. 사내에 아예 낮잠 공간이 있는 곳도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 사무환경에서나 보던 전자 게임이나 스포츠를 즐기는 게임룸도 이제 어지간한 IT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기업은 이윤 창출이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런 기업이 일하는 시간 중 놀게 한다, 심지어 더 잘 놀게 하려고 많은 돈을 투자해서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성과에,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곧 생산량이던 시대는 지났다. 괜히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에서 ‘자율’이 점차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아니다. 내가 내 컨디션에 맞게, 공간과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잠재력과 성과를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지, 8시간 꽉꽉 채워서, 혹은 야근까지 해가며 오래 일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지금도 공장은 ‘세 시간 휴식, 15분 휴식’처럼 정해진 사이클로 근무한다. 이곳은 ‘시간=생산량’이라는 명제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무실은 다르다.
그렇다면 업무시간 중 해도 되는 휴식, 자기 정비가 왜 출근 하자마자는 안 되는가? 출근해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을 웜업하는 시간이 내 업무 성과에 도움이 된다면 반대할 명분이 없지 않나?
오피스 뿐 아니라 여러 공간에서 ‘전이공간’이라는 개념을 종종 발견한다. 전이공간이란, 서로 성격이 다른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옮겨갈 때 두 공간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공간을 말한다. 예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도 활용되지만, 특히 행위의 성격이 극명히 다른 공간을 오갈 때 심리적 준비를 도와주는 공간으로도 기능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라운지에서 미팅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업무영역으로 진입할 때, 복도나 통로를 전이공간으로 꾸며 줌으로써 내면의 모드를 전환하는 과정을 돕는 것이다. 아침 출근해서 맞이하는 나만의 10분은 이러한 심리적 전환을 도와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냥 기분으로 ‘이게 업무에 도움이 돼요!’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 부분 역시 내가 회사와 계약한 근로 시간의 일부로 치는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업무 중 휴식시간이 자연스럽게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업무가 시작된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부분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업무 중 커뮤니케이션 규칙을 정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업무를 하며 내 업무에 집중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연락을 받고, 커뮤니케이션을 강요 받는다. 이런 부분을 피하기 위해 오전, 오후 특정 시간대를 정해 업무상 커뮤니케이션을 집중하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업무 시간 중에는 언제든 타인이 요청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응해야 한다는 관점이야 말로 오히려 생산성을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도 동의하기 어렵다. 9시에 출근하는 사람 때문에 업무 분위기가 흐트러진다면, 시차출퇴근제를 비롯한 시간 단위 유연 근무제는 시도도 할 수 없다.
간혹 9시 이전 출근을 고집하는 분들은 이런 예시를 들기도 한다. 그럼 학교 수업시간에도 수업 시작할 때 들어왔냐? 동사무소에 등본 떼러 갔는데 9시에 직원이 출근해서 업무준비하고 있으면 좋겠냐? 하지만 이건 비교 자체가 잘못됐다. 학교 수업은 시간 내 해야 할 활동이 명확하다. 이건 공장보다 더한 수준이다. 공장은 만약 목표 물량을 못 맞추면 잔업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은 해당 시간이 끝나면 곧장 다음 수업이 이어져야 한다. 때문에 수업 시간과 등교 시간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애초 이를 전제하고 시간 계획이 되어 있다. 서비스 개시 시간도 개념이 다르긴 마찬가지다. 이미 유니폼으로 환복 등 업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다면 이 또한 근로시간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 바 있다. 서비스 제공 시작 시간 전에 컴퓨터 부팅 등 기본적인 준비가 가능하도록 출근 시간은 다르게 적용하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SNS에서 출퇴근 시간 논란을 마주했을 때 내 입장은 이와 정반대였다. 아주 단호하게 이건 ‘계약 위반’이라고 댓글도 달았다. 회사 다닐 때도 임원이 9시 다 돼서 출근하는 팀원들 좀 일찍 출근하게 관리하라고 잔소리하면, 임원 편을 들었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보기 싫어서 였다. 자기보다 선배들도 일찍 와서 업무 준비하는데 본인은 업무도 늦게 시작하고, 남들 이미 업무 돌입한 시간에 우왕좌왕 하는 꼴이 예의 없고 다른 직원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 먼저 오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잔소리를 듣고도 굳이 9시 출근을 고집하는 모양새가 융통성 없게 느껴지고 상사의 지시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퇴사 후 더는 내가 관리할 젊은 직원들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뭔가 내가 놓친 게 있지 않을까. 고작 10분 차이인데, 그들이 기를 쓰고 9시 출근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마찬가지로 고작 10분 차이인데, 왜 우리는 그들이 일찍 오게 하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야 했을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내가 깨달은 건 이거였다. 9시 출근을 고집하는 이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는 상당히 많았다. 적어도 나는 사무환경을 연구하고 컨설팅 하는 사람인데, 앞에서 말한 이유들을 간과해서는 안 됐다. 반대로 9시부터 업무 개시를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절대적인 논리를 찾지 못했다. 이전까지 내가 내세웠던 많은 논리들은 억지로 찾아낸 것일 뿐, 사실은 예의나 암묵지의 강요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건 9시에 출근하느냐, 8시 50분에 출근하느냐가 아니라, 이런 10분 차이에 불과한 의견 차이가 서로를 적대시할 정도의 논란으로 번진 현실, 그리고 그 배경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