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시작점
회사를 떠난 지 약 3년이 지났다. 사무가구 회사의 사무환경연구팀에 근무하며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조직문화, 기타 사회 문화, 비즈니스 트렌드를 연구하고, 종종 사무환경 개선, 구축을 앞둔 고객사를 컨설팅하는 게 내 일이었다.
솔직히 내가 다니던 회사는 사무환경을 혁신하고 서비스한다는 업의 특성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드는 문화와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중소 제조업의 구시대적 문화가 팽배했다. 대부분의 과업이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톱다운으로 이뤄졌고, 조직은 경직되어 있었다. 복지는 낙후되어 있었고,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말은 우리가 만드는 제안서, 보고서에서 빠지지 않는 이슈였지만, 정작 우리와는 멀고도 먼 전설같은 이야기였다.
그런 회사를 10여년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그런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익숙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그 긴 시간 중 대부분을 부사수 없이 근무했고 현실보다 이론으로 조직 내 ‘관계’라는 개념을 익혔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니어가 되고도 한참만에 부사수가 생기고 밑에 함께 할 친구들이 생겼을 때, 조금은 회사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들을 대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 친구들은 지금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에 있는 꽤 젊은 친구들인데, 퇴사 후에도 서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서로 조언을 주고받고, 종종 만나서 요즘 사는 얘기들을 나누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과 처음 관계를 맺기 시작할 즈음, 회사는 세상의 변화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채용 과정에서 면접에 합격한 친구들이 입사를 거부하거나 아예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대부분의 조직에서 차부장급이 인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대리·과장급 인원들이 희귀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허리의 실종이었다. 밖에서는 ‘고용절벽’이라는 용어가 구직자들 입장에서의 일자리 대란으로 통용되지만, 우리에게는 중소기업의 고용난 개념으로 현실화됐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현실을 위기로 직시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직은 여전히 이른 퇴사와 면접 후 미입사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다. 퇴사자의 부족한 인내심, 또는 리더의 관리 역량 부족 등이 대표적이다. 수치적으로 확연한 추이를 보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회사는 달라진 게 없으니, 각각의 사안은 그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됐다. 세상이, 세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달라진 게 없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MZ를 둘러싼 세대 담론은 이미 2020년대 이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에서의 초창기 MZ 담론은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성향과 태도, 기능적 역량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마침 2020년 펜데믹 상황이 발발하면서 기업 내 디지털 전환과 재택근무 도입 등 일하는 방식 관점에서의 변화에 시선이 몰렸다. 물론, 사회문화적으로 MZ 담론은 더 넓은 방향성을 두고 논의가 이뤄져 왔지만, 기업들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수평적 조직문화나 조직, 인재 관리에 선진 HR 이론들을 적용하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새로운 세대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 보다는 그 동안 계속적으로 지적되어온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적, HR적 취약성을 해결하는 방향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전략이라기 보다 기본의 실행에 불과했던 것이다.
Z세대가 아닌, MZ로 묶인 넓은 범위로 세대담론을 바라본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 M세대는 MZ 담론이 등장했을 때 이미 대다수가 기업 내 인력 구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젊은 세대와 공존하기 위한 논의들은 계속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수평적 조직문화, 워라밸, 스마트 워크 등의 키워드가 등장했다. 미디어에서, 그리고 기업 내에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그 흐름을 타고 젊은 세대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결국 Z세대가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을 고민하기 보다는 기존 체제와 문화에 대한 반성적인 변화가 이어지면서 M과 Z가 같이 묶이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Z세대의 사회 진출이 실제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Z세대는 1997년생 이후 출생자들로 분류된다. 공교롭게도 내가 회사라는 조직을 떠나던 시기가 딱 그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은 내가 회사를 다니던 동안에도 늘 있었던 말이다. 나 역시도 어느 순간 기성세대가 되어 후배들과 나를 구분 짓기도 했다. 그들에게 사회생활, 회사생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일러주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직장생활 10년차가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비슷한 또래들에게 팁을 준다는 마음이었지만, 그 시기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그야말로 ‘큰일’ 낼 것 같은 ‘요즘 애들’에게 하는 조직 관리 차원에서의 교육에 가까웠다. 회사를 떠나기 전 2~3년 정도는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후배들을 보면서 ‘아, 진짜 Z세대가 가까워지는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꼰대였다.
당시에 내가 느끼던 불편함과 혼란은 다른 내 또래, 혹은 그 이상 연차의 선배들도 당연히 느꼈을 게다. 그들은, 또는 우리는 그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이 젊은 친구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들 역시 우리보다는 솔직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긴 해도 나름대로 수용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는 듯 보여도, 속으로는 체념하고, 불만을 쌓아가며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저연차자들의 이른 퇴사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Z세대와 같이 일을 하고 조직 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다. 때문에 현재 기업 내에서 일어나는 세대 갈등을 미디어나 SNS 속 다소 과장된 이야기로 접하고 과도하게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퇴사 직전 겪었던 위기감, 그리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기존 세대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일부 과장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기업 내 세대 갈등이 꽤 심각한 수준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갈등 상황을 겪고 있다. 빈부, 성별, 지역, 정치성향, 그리고 세대 갈등까지 사실상 나를 둘러싼 모든 정체성 요소에서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말 불거진 탄핵국면에서 세대별 정치 성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며, 갈등의 양상도 복합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과 직장은 사회적 갈등관계를 완화하는 중요한 영역으로서 기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은 소속된 집단의 성공, 성장, 가치 실현을 위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노력하는 곳이다.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공적 영역’이라는 관점으로 일부 이해하고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는 다른 갈등 요소들을 심리적으로 완화하는 방법과 태도를 학습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인생이 행복해지기 상당히 어렵다. 결국 직장인이라는 공동체가 매끄럽게 돌아갈 때 우리 직장인의 삶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공존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때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이해는 다름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해, 그리고 수많은 갈등 관계에서 나를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나와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를 나와 보니 왜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나, 왜 좀 더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아무래도 그 안에 있을 때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버리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래도 직접적인 갈등상황을 겪고 있지 않기에 ‘저들은 왜 그럴까’ 고민할 여유가 있다. 물론, 이 역시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의 세대 갈등을 보며 느낀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할 공동체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 그것이야 말로 진짜 내 행복을 지키는 일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