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관점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SNS에서도, 내 주변에서도 9시 출근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들이 주로 내세운 논리는 예의와 계약이었다.
하지만 계약의 해석에서 9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은 논리적으로 빈궁하다. 간혹 9시 출근, 6시 퇴근을 고집하는 젊은 직원을 관리하기 위해 그럼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업무에 쏟을 거냐면서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 휴식 시간을 얼마나 갖는지 체크하기로 했다는 발언도 보게 되는데, 치사한 복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려면 본인 스스로도 쉬는 시간 없이 8시간의 근무시간을 오로지 업무에만 몰두해야 맞다. 이미 근무 시간에 흡연, 휴식, 화장실 사용 등 암묵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개인 정비 활동이 포함되어 있는데, 업무 개시 준비 활동만큼은 내 별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게 압도적인 논리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의의 관점은 개인적으로 다소 폭력적이라고 느껴진다. 일단 일찍 오는 게 왜 예의의 영역인지 모르겠다. 선배들이 일찍 와서 일하고 있는데 그보다 늦게 오는 게 문제라면, 서로 일찍 오기 경쟁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만약 팀장이 8시에 출근한다면 다들 그 전에는 출근해야 맞는 건가? 그렇다면 그렇게 일찍 오지 않아도 되도록 적당히 8시 반 정도에 출근하는 팀장님과 8시 40~50분 사이에 출근하는 선배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건가?
이런 식으로 묻는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적당한 상식 선이 있는 거고, 그 최소한의 상식 선을 지키는 게 예의라는 주장이다. 즉, 지위와 상관없이 30분이상 일찍 오는 건 개인의 선택이지만, 최소한 10분 전에는 오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 아니냐는 뜻이다. 그런데 그 상식 선은 누가 정한 걸까? 분명히 9시에서 6시까지로 근로계약서상에 명시되어 있는 근로시간에 대해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할 정도의 상식을 과연 예의라고 볼 수 있을까?
예의의 사전적 정의는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을 말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상황에 대한 감정적 표현을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예의로 대표되는 언어와 행동양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불필요한 부분은 없어지거나 축소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예의와 관련한 행동에 관대한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서 술을 따라주며 격의 없이 한 손으로 받으라고 말하는 선배, 같이 편하게 맞담배 피워도 된다며 불을 붙여주는 선배 같은 경우다. 그런데 유독 그런 부분은 관대한 선배들이 출근시간 10분에는 민감하다.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는 9시부터 근로 개시이고, 이전에 준비를 끝내 놔야 한다면 출근 시간을 따로 명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 냉정해 보이지만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그렇다면 그들 입장에선 선배들이 일찍 나오기 때문에 자신들도 일찍 나와서 준비해야 한다는 그 ‘예의’에 기반한 암묵적 규칙이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냥 다같이 9시 출근해서 업무 준비하고 열심히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미 밝힌 것처럼 출근은 9시까지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정답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입장이 있고,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때로는 개인 간의 인식 차이가 아니라, 일종의 조직 내 문화로 접근할 수도 있다. 실질적 이유 못지않게 우리가 추구하는 업무에 임하는 태도, 가치관 또한 중요한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조직이라면, 출근시간 10분 전에는 와서 적어도 고객이 기대하는 업무 시간에는 행동에 들어갈 수 있게 하자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조직 내 일정한 기준이나 타협점을 두거나, 아니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논란을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입바른 소리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당연한 방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단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노력은 해봤을까? 안타까운 지점이 여기에 있다. 출근시간 논쟁에서 누가 이기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이 없다면, 양보도, 타협도, 또 다른 선택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출근시간 논쟁을 비롯한 많은 논란과 갈등이 서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만 이뤄져도 어느 정도 화해의 키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출근시간 논쟁은 실용과 예의, 둘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Z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세대들은 실용을 중시한다. 상대적으로 기성세대들은 예의와 명분을 실용 못지 않게 중요히 여긴다. 안타까운 것은 상대방의 이러한 가치관을 폄훼하는 인식이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예의를 눈치보기와 같은 효율을 희생시키는 불합리성으로 본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실용을 사회성이 결여된 예의 없음과 몰상식, 이기주의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각자만의 사정은 있다. 각자 성장해 온 세태와 환경이 다르고, 이에 따라 갖게 된 가치관도 다르다. 이러한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서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해야 진심 어린 소통과 대화가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