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초기 우리나라 사무실의 모습은?
지금부터는 우리 사무환경의 변화 과정과 사람들의 삶을 시간대로 나눠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사무환경의 인식과 의미, 역할의 변화를 살펴보고 현 시점에서 우리의 사무환경이 고민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 첫번째로 전쟁 이후, 이제 우리나라에도 진짜 산업화가 시작하던 그 시기, 1960~70년대를 만나볼까요?
이 시기에 대해서는 공간, 환경적 요소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시대적 상황과 문화에 더욱 중점을 두고 다뤄볼까 합니다.
1960~70년대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시작된 시기죠. 1950년대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암울한 사회∙경제 상황 속에 우리나라는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부터 걱정해야 했습니다. 이에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정부 주도의 산업화 정책 아래 사회간접자본과 기초산업 육성이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죠.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농업 중심에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전환되기 시작하고, 1960년 8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 257달러로 3배이상 상승합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지방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서울 등 도시로 이동하는 한편,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베이비붐이 일어나 전체 인구도 크게 늘어나며 도시화를 촉진했죠.
이런 흐름 속에 서울에서는 사무직 종사자 수와 비율도 급증합니다.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지역 사무직 종사자 수는 1960년 5만여명에서 1964년 약 15만명, 1969년에는 20만명을 돌파했으며, 전체 취업자 중 구성비는 1961년 5% 미만에서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16~25% 수준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전국의 사무직 종사자 비율이 1970년 직전까지 5%에 못 미쳤던 것과 비교하면 서울 집중 현상이 매우 급속도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죠.
1960~70년대 직장인들은 개인을 자신이 몸담은 직장과 동일시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은 국가의 발전이 곧 나의 생활과 연관된다는 인식으로 연결됐고, 직장에서도 회사의 성장이 곧 개인의 비전으로 여겨졌죠.
이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과 인간적 관계에 기반한 공동체적 직장 문화가 만들어진 배경이 됐고, 조직의 단합과 합심을 강조하며 조직이 개인에 우선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한 번 몸 담은 직장이 평생 직장이 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됐던 만큼 이런 부분은 기업문화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죠. 현재까지 조직을 개인에 우선시하는 기업문화, 충성도의 강조, 수직적 체계 등 한국 기업 특유의 분위기는 이때 그 토양이 잡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당시의 법정노동시간은 1953년 전쟁 중 미군정에 의해 도입된 주당 48시간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폐허가 된 땅에서 먹고살기 위해 앞뒤 없이 달리던 시기였던 걸 생각하면 의외죠? 사실 이건 기본적인 기준일 뿐입니다. 노사 상호 합의 하에 최대 60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허용했는데요, 주 6일 근무 기준으로 일 8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기준이 실제로도 철저히 지켜지지는 못했는데요, 예상하신 것처럼 한창 경제성장을 이루던 그 시절은 주 6일 근무로도 모자라 초과근무가 일상적으로 반복됐습니다.
노동청(당시 명칭) 자료에 따르면 1967년 기준 월평균 임금은 8950원이었으며, 사무직은 1만2280원으로 기능직(8750원)에 비해 약 37%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함께 임금도 수준도 빠르게 상승해 약 10년 뒤인 1976년의 사무직 평균 임금은 거의 8배가 오른 9만4372원에 이르렀습니다.
산업계에서 사무직의 비중은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아직 오피스에서의 일하는 방식은 대부분이 필기구와 주판, 기껏해야 타자기 등을 사용하던 재래식 풍경이 전부였습니. 다만, 기능적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도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가구 역시 이전보다 질적으로 향상된 수준을 보이게 되는데요.
197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도 팩시밀리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국내 생산이 시작된 복사기는 1970년대말까지 전국 관공서에 설치될 정도로 보급이 확대됐습니다.
1960년대의 빠른 산업화와 사무직 종사자의 급증은 자연스럽게 사무실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일터가 확대되는 배경이 됐습니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건물 신축이 증가하고 고층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는데요. 1960년대 전반까지 서울 도심에서도 10층 내외 건물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는 10층 이상 고층건물이 속속 등장합니다.
* 단위: 개(증가율:배) / 자료 출처: 출처: 김세진. 2004. 1960년대 사무소 건축의 전개와 전환기적 성격. 서울대학교 대학원
1970년대 들어서는 정부 주도하에 도심 재개발이 이뤄지며 대형 오피스 빌딩 신축이 더욱 본격화됐는데요, 이런 업무용 고층 빌딩의 증가는 서울 도심 경관을 변화시키며 정부 주요 시책 중 하나였던 조국 근대화 달성의 상징이 됐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신규 오피스 빌딩을 중심으로 임대료가 급증하는 등 사무실 수요가 폭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1969년 한 기사에 따르면 동경과 더불어 서울이 아시아 권에서 가장 사무실 수요가 급증하는 도시이며 이후 5년 간 서울에 200만㎡의 사무실이 건설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죠. 그러나 당시의 업무용 건물은 건축형식이나 기능적 측면 등 질적인 접근 보다는 고층화와 같은 양적 팽창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고층 건물의 사전 심의, 피난∙방재 등 안전 요소와 주차 공간 등에 대한 규제와 실질적인 감독 역시 1970년대 말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졌죠.
사무가구는 1950년대에 휴전 후 국내 주둔하던 연합군의 가구들을 관공서 등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면, 1960년대 들어 국내에서 직접 사무가구가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아직까지 합판이나 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기술이 부족해 제품 수준은 낮은 편이었으나, 사무실이라는 공간적 개념을 기능적으로 확립해 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1970년대에는 무늬목이나 포마이카로 마감한 가구, 철제 가구 등이 등장하며 품질적으로 향상된 수준을 보여줍니다.
1970년대 사무실 배치 형태(위)와 당시 신문광고의 한 장면(아래)
* 사무실 배치 이미지 출처:서윤영.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궁리
1960~70년대 일반적인 사무실 배치 형태는 팀장급 상급자가 중앙 윗자리에 위치하고, 아래로 직원들이 직급 순으로 모여 앉는 단편적인 형태의 맞보기식 배치가 주를 이뤘는데요. 인원이 많은 곳은 직급별로 열을 지어 한 방향을 보고 배치하는 학교식 배치도 자주 사용됐습니다. 뒷쪽으로 갈수록 직급이 높아지고, 앞에 앉은 직원들을 감시하기 쉬운 구조죠. 실내환경에서도 건축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는 양적 목표에 치중하고 상하관계 중심의 수직적 체계와 문화가 반영된 모습입니다.
아직까지는 개인 프라이버시나 업무 동선, 인간공학적 환경 등 체계화된 사무환경에 대한 인식은 전무한 수준이었는데요. 이러한 배치는 국내에 OA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1990년대까지도 많은 사무실에서 사용됐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