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석 Oct 25. 2024

한국의 오피스 변천사(2)-1980년대

현대적 사무환경의 개념이 잡히기 시작하다


우리나라가 현대적 사무환경의 기준을 잡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1980년대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라는 업무방식의 대변혁을 가져온 도구의 등장과 함께 1980년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무환경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등장에 의의를 둘뿐, 실질적인 트렌드, 현장의 변화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사무환경'이라는 개념이 들어온 1980년대는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1980년대 우리나라는 끼니를 걱정하던 빈국에서 주목 받는 신흥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1965년 11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 1686달러로 15.3배 늘었으며, 같은 기간 취업자 수는 811만명에서 1368만명으로 68.7%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5718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5000달러를 돌파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1인당 국민소득 만 달러도 '그게 뭐야?' 정도의 느낌이겠지만, 정말 계절에 따라 쌀 한 톨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를 20세기에 겪어온 우리 국민에게 반세기의 시간도 채 안 걸려 이러한 성장을 일궜다는 건 정말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죠. 


1980년대는 이런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생활 수준과 사회문화적인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등을 겪으며 글로벌 인식과 선진국 진입에 대한 열망도 더욱 높아졌죠.


그런데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1980년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IT의 기반이 구축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수준을 지금과 비교힐 수는 없지만, 국가가 나서 그 기틀을 만들어가던 시기라는 점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1980년대 초부터 정부에서는 정보화 사회를 표방하며 기존의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정보 산업으로 확장하는 산업 구조 개편을 시작합니다. 그 일환으로 정규 교육 과정에 컴퓨터 교육이 도입되고, 학교에 교육용 PC가 보급되는 등 컴퓨터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81년 첫 국산 PC가 출시된 이래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함께 관련 기업들의 PC 개발도 활성화됐습니다.   


경제 성장과 사회문화적 변화, 그리고 기술의 발달을 배경으로 1980년대 우리나라에도 OA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OA 시스템은 이전에 타자기, 계산기, 복사기 등 도구들의 단편적인 도입과는 달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해 업무방식에 대한 개념과 체계, 환경까지 모든 것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착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1980년대는 재래식 사무환경에서 OA 기반의 현대적 사무환경으로 전환되는 시작점으로서 변화와 확산의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진국과 세계화를 향해가는 흐름 속에 사회적으로 선진적인 OA 환경에 대한 높은 의지와 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1983년 정부는 과천 제2종합청사에 시범사무소를 설치하며 OA 시스템 확산에 나섰습니다. 시범사무소는 컴퓨터, 팩시밀리 등 20여 종의 OA기기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인간공학적 관점의 사무용 가구, 칸막이를 통한 공간 활용과 집중 환경 조성 등 공간과 환경적 측면에서도 현대적인 관점이 반영됐습니다. 단순히 기기의 수용을 벗어나 그로 인해 창출되는 업무 방식, 행동 패턴의 변화도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죠.


기업과 관공서에서는 PC와 워드프로세서를 비롯한 새로운 OA 장비의 수요도 급증했습니다. 당시 신문기사들에 따르면 1982년까지 7~8년간 663대 보급에 그쳤던 팩시밀리는 1983년에만 1450여대가 보급됐고, 1983년 한 해 5만대가 보급됐던 PC가 1984년 15만대 신규 보급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의 기업문화는 1960~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생 직장의 개념 하에 조직과 나의 성공을 동일시하고, 서열 중심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는 국가경제와 기업들의 성장이 가파른 상황 속에서 여전히 당연하게 여겨졌죠. 사무자동화의 개념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 대다수 기업들은 기존의 환경과 일하는 방식을 유지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문화나 업무 시스템에서도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까지 장시간 노동 문화도 여전하게 이어져온 가운데,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이런 흐름에도 변화가 이뤄집니다. 1950년대 정해졌던 법정 근로시간이 1989년에 이르러서야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된 것이죠. 주당 최대 근로시간 역시 64시간으로 조정됐습니다. 이는 1990년대 근로시간을 비롯한 노동문화의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1980년 국내 사무직 임금 수준은 월평균 21만1000원선으로, 생산직 13만원의 1.6배에 이르렀습니다. 1981년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임금상승률은 16.6%, 중소기업은 17.1%로 나타나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1989년 기준 사무직 임금은 월평균 63만7610원으로, 생산직 평균 임금 대비 약 1.4배 수준이었습니다. 아직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극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은 것은 아니었으나, 사무직과 현장직의 임금 불균형은 이미 이때 상당한 수준에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뉴 오피스 환경과 경영혁신에 관한 연구 ( 6 ). 오피스 환경의 변천과 사무형태, 한국가구학회지 제6권 제1호(1995.12)


1980년대 오피스 공간의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이른바 빌딩 자동화(BA)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BA는 컴퓨터를 통해 건물의 온∙습도, 조명, 공조 등을 자동 제어, 관리하며 에너지와 환경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1978년 서울대병원이 BA 시스템을 적용한 이래 신축 빌딩은 물론, 많은 기존 대형 빌딩들까지 BA가 확산됐습니다. 1987년의 한 기사에 따르면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당시 전국에 100여개의 빌딩이 BA 시스템을 갖췄으며, 국내 기업들도 해외 유명 업체와 기술제휴를 맺는 등 관련 시장 진출이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LAN을 기반으로 사내 정보 네트워크와 화상회의, 통합 전산 시스템 등 OA, TC(정보통신)까지 연계한 BAS 빌딩 역시 1980년대 후반 처음 등장했습니다. OA 시스템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여 오피스 빌딩과 공간에도 혁신이 시작된 것이죠. 


수기로 서류를 작성하고, 기껏해야 계산기나 타자기를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과거 업무방식은 앉아서 서류 작업 등을 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 서류 보관을 위한 캐비닛 등의 단순한 가구로도 대응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기기의 배치와 배선까지 고려해야 하는 OA 환경은 그에 맞는 특화된 기능과 형태, 구조를 필요로 했습니다. 


1984년 코아스의 전신인 한국OA시스가 설립되면서 이러한 요구에 부합하는 국내 최초의 OA 시스템 사무가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한국OA시스의 OA 시스템 사무가구는 이후 국내 사무가구와 환경의 흐름을 바꾸는 토대이자 전형이 됐습니다.


                  * 사무실 배치 이미지 출처:서윤영.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궁리.


오피스 레이아웃 형태는 6, 70년대의 맞보기식 배치와 마치 교실의 책상 배치와 같이 앞부터 직급 순으로 1인 좌석을 줄 맞춰 배치하는 학교식 배치가 여전히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다수 인원이 근무하는 대기업이나 주요 관공서의 근무환경에서는 이런 학교식 배치가 사실상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개인 업무영역을 구분해 최소한의 업무적 프라이버시를 제공하지만, 직급에 따라 관리∙감독이 이뤄지는 수직적 문화를 느낄 수 있죠.


가구 측면에서는 아직 OA 기기의 가격이 고가이고 컴퓨터 활용 가능 인력 또한 많지 않아 공용 OA 기기를 거치할 수 있는 CRT 테이블을 사용하거나 일부 좌석에만 컴퓨터와 컴퓨터용 책상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아직 OA 시스템이 대중화까지 이르지는 못한 시점에서 OA용 가구가 아니라도 경제 성장에 따라 자재와 품질의 고급화가 이뤄지고, 조립식 모듈형 사무가구가 등장하는 등 혁신적인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사무가구 시장 또한 1988년 3000억원 규모에서 1989년 3500억원 규모로 성장이 전망될 정도로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사무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시작된 역사적인 시기였던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