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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Oct 25. 2024

한국의 오피스 변천사(3)-1990년대

PC시대의 개막과 함께 본격화된 사무환경 선진화

1990년대 우리나라는 격변의 시기를 겪게됩니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 호황은 1990년대 초 최고조에 이르러 과소비, 오렌지족 등 과도한 소비를 꼬집는 신조어들이 등장할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으며, 1995년에는 꿈과도 같던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을 돌파하기도 했죠. 


그러나 1997년말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입고 사회적으로도 분위기가 급반전됩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부도를 맞고, 살아 남은 기업들도 상당수가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하며 실업률이 치솟았습니다.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 요소였지만, 동시에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직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했습니다. 산업계 전반에 확대되는 구조조정 속에 평생직장의 개념은 점차 사라졌으며, 이에 따라 창업 인구가 증가하고 기존 기업의 인력이 유입되며 벤처기업 붐이 인 시기이기도 하죠.


이런 대 변화와 혼란의 시기, 우리나라의 오피스 환경 또한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중반을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암흑기라 불릴만한 시기를 보내는 와중에도 1980년대 등장한 OA 시스템은 이 시기 들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고, 그렇게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사무환경의 현대화, 선진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화 바람은 1990년대 대중화로 접어듭니다. PC 기술의 발전, 인터넷 인프라 구축과 함께 1990년대 후반까지 PC 보급 및 대중화 정책이 이어졌는데요. 그 결과 2000년 기준 PC 1대당 인구 수는 3.6명을 기록하며, 미국(1.55)보다는 낮지만 일본(3.27)에 근접한 수준까지 보편화됩니다.


1990년대는 경제 상황과 산업 구조가 호황에서 불황으로 큰 부침을 겪은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PC의 대중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은 경제상황과 상관없이 IT 기술의 발달을 빠른 속도로 이끌어갑니다. 


1990년대 업무 전자화 이슈를 다룬 한겨레의 신문기사(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그렇게 1980년대 등장한 사무자동화의 개념은 1990년대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라니, 우리 회사에서 될 말이야? 컴퓨터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데. 컴퓨터는 대기업 같은데서나 쓰는 거지. 


1980년대를 지배했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은 1990년대 들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 당시 관점으로 뉴노멀이 시작된 셈이죠. 흔히 이 시기를 '사무환경의 패러다임이 바뀐 시기'로 일컫게 됩니다. 


1997년 연간 기업에 보급된 PC 수는 50만여대 수준이었으나, 1999년에는 81만여대로 2년 사이 62% 증가했으며, 2000년에는 여기서 53.3% 더 증가한 약 124만5천대를 기록했습니다. 다인 1PC, 2인 1PC로 PC를 공유하던 시기를 거쳐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웬만한 기업은 근무자 각자 PC를 사용하는 1인 1PC 체제가 일반화됐죠.


비슷한 시기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1990년대말 기업 내 업무 방식과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문화 전반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기업, 공기업 등을 시작으로 그룹웨어 시스템이 도입되고, 온라인 지시∙보고, 이메일 업무 처리도 본격화됐습니다. 펜과 자, 타자기와 계산기에 기껏해야 복사기 정도가 고작이던 우리나라 사무실 풍경은 그렇게 완전히 탈바꿈하게 됩니다. 


1990년대는 기존의 수직적이고 공동체지향적이던 국내 기업문화에도 변화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외환위기 속에 구조조정과 취업난을 겪으며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지고, 그만큼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낮아지며 개인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역대 어느 세대보다도 자유롭고 개성 강한 X세대의 사회 진출, 벤처기업 문화에 대한 관심, IT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하는 방식과 커뮤니케이션의 변화 또한 기업문화의 변화 필요성을 인식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변화의 흐름이 서서히 나타나는 시기로 기존 문화가 상당부분 유지되는 수준이었죠. 업무 도구와 환경에서 1980년대 OA 시스템 개념이 도입되긴 했으나 등장 자체에 의의를 두던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당시의 기업문화의 변화는 회식문화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요. 이전까지 먹고 마시는 게 전부였다면 노래방 등 유흥문화가 발전하면서 선택권이 다양화됐고, 특히 공연 관람이나 볼링 등 스포츠를 즐기기도 하는 등 젊은 층의 취향이 반영된 새로운 회식 풍경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업무 방식에서도 점차 체계화된 시스템을 기반으로 업무 교육이나 프로세스가 이뤄지며 보다 합리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죠.


 근로시간은 1989년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된 이후 1990년대 들어 일부 기업은 토요일 오전 근무나 격주 휴무를 실시하기도 하고, 음력 설이 3일 휴일로 바뀌는 등 조금씩 단축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채용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초과근무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죠.  


1991년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사무직 임금은 월 평균 64만2000원이었습니다. 중소기업 평균 임금이 대기업의 66.3%로 임금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여전히 경제성장 흐름이 이어지면서 지속적으로 임금이 상승해왔죠. 


그러나 1998년 중기중앙회에서발표한 월평균 임금은 사무직 기준 104만8000원으로 1990년대 초반에 비하면 40%이상 증가했지만 전년 114만2000원에 비하면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외환위기 여파가 남은 근로자들의 임금에까지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죠.


이런 기술적, 문화적 변화는 사무실이라는 공간과 환경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OA 시스템의 본격화가 일하는 환경의 기능적 조건은 물론, 기본적인 관점까지 큰 영향을 미쳤고, 사무환경의 일대 혁신으로 이어졌죠. 


1993년 ‘사무환경개선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시작해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사무환경개선추진협회는 사무환경에 대한 당시 산업계 전반의 인식 변화를 보여줍니다. 공장이 아닌 사무실의 생산성이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됐으며, 특히 규칙적인 작업의 상당부분이 OA기기에 맡겨지면서 사무직 종사자에게 지적 활동에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중요 과제로 자리잡아갔습니다. 



이는 한국 사무환경 역사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데요. 단순히 OA 시스템을 통한 기능적 지원을 넘어 프라이버시 등 사용자 중심의 인식이 확산됐고,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중요도와 업무 비율 수준에서 기능적 업무수행을 지적 업무 수행이 넘어서는 현대적 사무환경의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죠. 


사무환경개선추진협회에서 주관한 지식오피스대상 수상 기업 소개기사(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여기에는 1980~90년대 기간동안 생활 수준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사무실에서도 쾌적한 사무환경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기업의 가치관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점 또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간적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을 살펴보자면, OA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 사무가구가 일반적으로 활용됐으며 개인 프라이버시와 효율적인 배선을 지원하기 위한 패널의 사용이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당시의 사무환경은 개인의 작업 능률과 몰입에 많은 비중을 뒀는데요. 관리∙감독적 부분이 두드러지던 학교식 배치는 점차 줄어들고 개인화된 책상으로 안정적인 작업환경을 배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팀 내 소통과 업무 연계를 고려한 팀 단위 레이아웃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무실 배치가 이때부터 보편화된 것이죠.


가구적으로는 CRT 모니터를 거치하고 PC 워크와 페이퍼 워크를 병행하는데 유리한 L형 책상이 등장했으며, VDT 작업환경 속에 인간공학적 요소에 대한 고려도 중요해졌습니다. 바른 자세를 유지시켜주고 장시간 좌식 업무에서의 피로를 최소화하는 인간공학적이고 기능적인 의자에 대한 광고도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역할을 PC로 대변되는 IT 기술로 상당히 넘긴 이 시점에서 비로소 근무자, 즉 사람에 집중하는 사무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도 시작된 셈이죠.



업무환경의 쾌적성, 인체공학 등을 강조한 1990년대 후반 사무가구 신문 광고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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