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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Apr 06. 2024

너를 끊어 말어?

시그널과 타이밍


우리가 타인과 맺는 애정 관계의 질(quality)은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와 정비례한다.
-제임스 홀리스 <사랑의 조건>




살면서 누구나 한두 명쯤, 가까운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끊긴 인연 또는 현재 끊을까 말까 고민하는 인연은? 그(녀)는 어릴 때 친구일 수도 있고 최근 갑작스레 가까워진 지인일 수도 있겠다. 부득이하게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와 더 이상 왕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그 사람이 부모일 수도 있다. 우리는 왜 과거 '좋았던' 인연을 끊어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물론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만큼 해로운 것도 없겠다. 극단의 예를 들어보자. 사기꾼, 배신자, 폭력적이거나 기회주의자는 어떤가? 그것도 아니면 나르시시스트, 편집증? 그런 유형의 인간과는 애초부터 깊은 인연을 맺기 어렵다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마치 어릴 적 내가 강북에 사는데 강남 친구를 사귈 수 없었던 것처럼 끌림에도 물리적 또는 심적 거리가 있다. 인연이란 보통 쌍방의 필요 또는 끌림에 의해 시작되며 남녀 사이의 짝사랑을 제외하고 한쪽만 인정하는 관계란 매우 드물다. 또한 그중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가 필요했던 그 사람, 우리가 이끌렸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혹시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녀)가 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것일까?


과거 인터넷 카페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A라는 그녀가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나무와 심리학을 연구하는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다만 우리는 각각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왕래를 할 뿐이었다. 그녀는 매우 박식했고 위트가 넘쳐 이야기를 나눌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 역시 나와의 인연을 신기해하며 소울 메이트라 했다. 여자들의 우정도 종종 불타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가 그랬다. 조금 급한 듯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도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수필집 출판을 앞두고 나에게 서평을 써달라는 게 아닌가. 나는 망설이느라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급했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그녀를 지지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었고 수년째 관계를 맺어온 그들에 비해서 나는 고작 그녀와 이야기 나눈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에게 나는 서평을 쓸 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내가 아는 서평이란 작품에 대한 찬사였고 나는 찬사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그녀를 그만큼 알지 못했다. 나는 그런 내 맘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보낸 내 답변은 온갖 구차한 변명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30대 초반의 나는 여전히 사귐에 서툴렀고 지나치게 신중했지만 한편 충동적이기도 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그녀는 나의 거절에 깊이 실망했고 어느 포인트에선가 불쾌함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내가 보낸 시그널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짧은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그녀를 붙잡을 마음도 방법도 없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녀를 환대하며 내 마음에 방을 내어줄 때는 언제고 그녀가 손을 내밀자 냅다 밀어낸 나는 결국 그녀와 밀당을 한 셈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타이밍이 어긋났다.


조금 뜬금없지만, 나는 강아지 대통령 강형욱의 팬이다. 웬만한 스타에는 열광하지 않지만 강형욱의 따뜻한 감성과 단호한 철학에 공감할 때가 많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그의 보듬TV를 시청할 때였다. 반려견 행동 심리 전문가답게 강아지 사회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그는 반려견에게 반드시 친구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친구는 중요하지만 저는 친구 사귀는 데 큰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없다고 괴롭지 않았고,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이 더 중요했던 저는 꿈을 찾는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만 결코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쑥스럽게 웃으며) 제가 사회성이 없나요?"


나는 문득 내가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유형의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백 번 다시 생각해도 건강하지 못한 관계는 틀림없이 해롭다. 그런데 정신분석가 제임스 홀리스는 그의 책 <사랑의 조건>에서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질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와 정비례한다고 하였다.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종종 타인에게서 내가 끊어내고 싶은 내 모습을 보았고 그에게서 애증을 느끼곤 했다. 아마도 내가 그들을 끊어내지도 이어가지도 못 했던 이유일 것이다. 과연 나는 나와의 관계에서 어떤 사람인걸까? 나는 나에게 친절한가, 외면하며 나를 외롭게 한 적은 없나, 혹 비난하지는 않았는지, 대체로 진심이었는지, 믿고 기다려주었는지, 마지막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충분히 사랑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늦지 않은 타이밍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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