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최근 들어 나는 공항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 한 손에는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에는 여권을 들고 심지어 나는 이미 공항에 서 있다. 공항이란 장소가 주는 묘한 느낌, 알 수 없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수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때때로 이방인이 되기도 마침내 돌아온 탕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내 모습은 틀림없는 이산가족이다. 나는 코로나19로 벌써 3년이 넘게 한국 집에 못 가고 있다.
인천 바다 위를 날던 비행기가 거대한 굉음을 내며 착륙을 알리고 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서둘러 수속을 마친다. 드디어 그립던 한국 편의점 커피와 김밥을 챙겨 공항버스를 탄다. 역시 공항은 쾌적한 한국 인천 공항이 최고다. 아는 사람은 안다. 한국의 모든 것이 최고인 순간들을.
이쯤에서 눈물이 한번 흐를지도 모르겠다. 버스 옆자리가 비었다면 마음 놓고 울 수도. 차만 타면 잠이 드는 나지만 꿈이면 깰까 봐 눈도 감지 못하고 하나 둘 창 밖으로 그립던 한국어 간판만 셀 것이다. 어느새 집 근처 사거리가 나오면 좌회전 버스 정거장엔 언제나처럼 오빠가 마중 나와 있겠지. 공항에 나오지 말라하길 잘했다. 어느새 오빠 머리도 온통 은빛으로 물들었구나. 눈물은 아직 이르다.
공항버스에서 짐을 내리는 척 쏟아지는 그리움을 꾹꾹 참아내며 나는 오빠와 애써 쿨한 인사를 나눈다. 우리는 나란히 캐리어를 끌고 걷는다. 달큼하고 아련한 집 냄새가 점차 가까워지니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이제 조금만 가면 엄마를 볼 수 있다. 마흔이 넘은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 바다 건너 저 편에서 아내와 엄마로 살며 종종 잊었던 사실, 외로움에 치를 떨 때마다 울컥하고 떠올랐던,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 그 위대한 사실.
현관문 비밀번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강아지 통통이가 뛰쳐나오고 저 넘어 엄마 아빠 얼굴이 보인다. 더 작고 더 왜소해진 엄마는 여전히 나를 아기처럼 따뜻하게 안아주고. 울지 않으리라 했던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이내 나는 서럽게 울어버린다. 한 발치 뒤에 서 계시던 아버지도 다가와 나를 가득히 안아준다. 사람의 온기가 이처럼 따뜻한 줄. 왜 중요한 사실은 늘 늦게 깨닫는 것일까.
코로나19로 우리는 이렇게 3년이 넘게 이산가족이 되었다. 철없던 나이 스물여덟에 외국인과 결혼한 나는 중국에서 이방인으로 산 지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왜 몰랐을까? 하늘길 한 시간 반이 얼마나 먼 거리였는지를. 내가 사는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지하고 있어서 아직 하늘길이 원활하지 않다. 혼자라도 다녀오고 싶다가도 한 번 가면 얼마가 걸릴지 몰라 선듯 결심을 못하는 나. 이럴 땐 또 내 자식이 먼저일까. 딸아이가 눈에 밟혀 혼자 다니러 가지도 못한다. 중국 여권을 소지한 딸아이는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여권과 비자 연장이 쉽지 않다. 혹 3년이 짧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실제로 더 오랜 시간 가족을 못 만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리움, 어쩌면 평생 몰라도 될 그리움, 나는 언제까지 기다려주지도 않을 시간을 붙잡고 있어야 할까. 생각이 많은 밤이다. 부모가 뭔지 자식이 뭔지, 코로나는 또 뭔지. 나는 언제쯤 내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이 글은 여러 차례 쓰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다가 보름이 지난 오늘에서야 발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