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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Apr 08. 2024

혼자 남으니, 쓰고 싶어 졌다

글쓰기의 시작


춤춰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마크 트웨인-



어릴 때부터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거실이든 골목이든 기회만 되면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놓고 부르고 또 불렀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나는 꼬마 관종이었을까? 관객이 좋았고 박수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가수의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사 없는 음악에는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멜로디가 너무 잔잔하면 지루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아무리 들어도 뭐가 누구의 곡인지 어떤 악기로 연주했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한 때 나는 대학 노래패에서 기타와 키보드도 익혔으나 여전히 연주는 노래를 위한 도구일 뿐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뭐 타고난 보컬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TV에서 라디오에서 아무리 매력적인 뮤지션이 등장해도 감동은 그때뿐이었다. 쉽게 말해 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고 악기도 잘 다루고 싶었으나 그 과정을 해내는 방법은 몰랐던 것이다. 좀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노력을 하는 방법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도 그때는 잘 몰랐다. 과연 나에게 있어서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며 음악과 멀어졌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클래식과 재즈를 즐겨 듣고 제법 좋아하는 뮤지션도 생겼다. 물론 음악을 들을 때면 여전히 누가 만든 곡인지 어떤 악기로 연주되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말이다. 또한 나는 아직도 노래 부르는 것이 좋고 내게는 언제든 꺼내 들을 수 있는 플레이 리스트가 저장되어 있다. 기타와 키보드는 여전히 잘 못 다루지만 이제 나는 관객과 박수가 없이도 충분히 연주와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정신분석의 대가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쓰기의 욕구는 나에게 있어서 연주의 욕구와도 비슷했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만 진정 내가 갈망한 것은 '수준급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었을 뿐, 결과에 필요한 과정은 늘 외면해 왔다. 마치 과거 내가 노래할 때 관객과 박수를 기대한 것과도 유사하다. 심지어 아무도 관심이 없다 싶으면 노래도 연주도 이내 시큰둥해졌으니 나는 '연습'의 개념을 알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20대가 되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분명 뭐든 해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명 가수와 배우, 작가들도 다 그렇지 않은가? 나라고 뭐 다르겠어, 인간이 다 그런 거지'라고 투덜대며 언젠가 나에게도 주어질 기회에 대해 상상했다. 꽤 오랜 시간의 착각이었다. 나는 매우 평범했고 유명해질 만큼의 열정을 쏟아부을 끈기와 용기, 배짱과 성실함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오만하기까지 했다.


Better late than never!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독자 없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마치 관객 없는 무대 위 고독한 연주자처럼, 춤추는 댄서처럼, 오로지 연주와 춤에 몰두하며 나를 온전히 쏟아부을 수는 없을까?


질리지 않길 바라지만,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사춘기 딸아이의 엄마임을 밝힌다. 엄마의 세계관 속에는 늘 어린아이가 꼬물거리고 있기 때문일까? 나의 거의 모든 성장은 엄마가 되고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행복했지만 쉽게 외로워졌고, 채워진 만큼 공허했으며, 사랑한 만큼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다. 학창 시절 '화장실 친구'가 필요했던 나였고 다 자란 후에도 혼자 여행은 절대로 안 간다던 나였는데, 마흔이 넘어 비로소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렇게 혼자 남으니 나는 다시 간절하게 쓰고 싶어 졌다.


그렇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글쓰기는 점차 나에게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워주는 치유의 수단이 되었다. 물론 배는 고플 수 있으니 돈 되는 글과의 균형을 맞추는 것 또한 어른됨의 책임일 것이다. 글쓰기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지금의 나는 노래든 연주든 글이든, 기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좋아요'가 없어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할 일이다.


문득 과거 써놓은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을 보니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다. 나는 이렇게 아주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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