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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Apr 11. 2024

글쓰기 리셋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 극복하기


나쁜 글의 뿌리는 두려움이다.
-스티븐 킹-



평소 글감이 가장 잘 떠오르는 때는 언제일까? 좋거나 나쁜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중요한 선택 전 후에, 그것도 아니면 비우기 위한 여행 중에서 나는 글감을 만난다. 그런데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글로 옮길 재주는 없다. 글감은 예고도 없이 툭 던져지고 내가 받지 못하면 결국 무용한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쓰는 이들의 숙명이 아닐까.


그렇다면 글감이 떠오르는 장소는 어디일까? 어쩌면 장소보다는 상태가 아닐까? 내 경우 혼자 남은 시간 또는 기다리는 시간에 유독 떠오르는 글조각이 많다. 공항 또는 기내에서, 기차역과 기차 안, 병원과 병실, 반대로 생애 처음 가 본 장소 또는 우연히 들어간 카페 안에서도 글감은 떠오른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떠오르는 만 가지 상념도 쪼개고 붙이고 이어주면 모두 각각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감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지만 평범한 루틴 속에도 글감은 있다. 내게는 산책, 운동, 샤워할 때 화장실에서, 이동하는 지하철 안 그리고 잠들기 전과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가 특히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 곳곳에는 랜덤으로 포스트잇이 배치되어 있고 잠들기 직전까지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문제는 글감이 쪼그라드는 썰물의 시간 때문이다. 풍요로운 밀물의 시간이 지나고 썰물의 시간이 오면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마감 시간에라도 쫓긴다면 뇌는 풀가동 되지만 나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으로 더 깊이 빠져들곤 한다. 이때를 대비해 글감을 비축해 뒀으나 쓰기 세포가 불통이면 금감도 결국 꺼져가는 불씨에 불과하다. 결국 리셋의 시간이다.


이럴 땐 일단 멈춰야 한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해 보자. 꽃과 나무, 하늘과 바람은 분명 환기의 기능(치유의 능력)이 있고 언제 어디든 우리가 원하는 곳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무려 꽁짜다.


외출이 어렵다면 새침 떼고 아예 다른 일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다. 마치 향수 진열대에서 강열한 향기에 취해 분별력이 떨어졌을 때 원두향을 맡아주는 것과도 비슷하다. 만약 머릿속이 복잡한 것이 원인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보는 것(숙면)도 나쁘지 않다. 뇌는 가소성으로 인해 매일 새로운 것을 원하고 그것이 충족될 때마다 다시 연결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고통으로 기인한 것이라면 어떨까? 그 어떤 끔찍한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고 게다가 나에게는 통제할 능력도 권한도 없다면 나는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꽤 오래된 문제일 수도 방금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죽지 않으면 끊어내야 할 패턴이라는 점이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 나를 성장시킨다'라고 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고통은 머물러있는 동안에는 정작 나에게 아무것도 내어주지 못한다. 오직 고통이 순행하여 과거형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역시 역설적이지만 고통의 경험은 쓰기에 있어 남다른 무기가 될 수 있기에 더없이 귀하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글감과 글쓰기는 오랜 시간 평행 걷기를 하지만 밀땅이 끝나고 나면 결국 평온한 시간도 온다. 그러니 쓰는 이들이여, 라이터스 블록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스티븐 킹은 나쁜 글의 뿌리가 '두려움'이라고 했다.


물론 내게도 글쓰기의 두려움은 있다. 다만 어차피 내 것이라면 두려움의 크기와 모양, 머무는 시간까지도 내가 결정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글쓰기 리셋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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