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쓰고 또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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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헤밍웨이-
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헤밍웨이의 문체를 드러낸 그의 6 단어 즉흥 소설이다. 정작 그의 완전한 창작인지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지만 전형적인 그의 문체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중요한 건 나는 이 간결한 문장을 읽고 눈물이 났다는 점이다. 친절한 설명과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그의 문체는 독자의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생전 헤밍웨이의 마초적인 성격과 문란했던 사생활, 말년의 정신질환도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손상시킬 수 없다.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하퍼 리
솔직히 나는 여전히 내 글을 내놓기가 부끄럽다. 글공부가 충분하지도 인생의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한 것도 그렇다고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것도 아닌지라 좋은 글을 써낼 자신이 없다. 다만 지금은 일단 쓰기로 했다. 내게는 약간의 뻔뻔함이 필요한 시간이다.
모든 문서의 초안은 끔찍하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죽치고 앉아서 그저 쓰는 수밖에는 없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총 서른아홉 번 새로 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특히 욕심이 많을 때일수록 첫 문장과 초고를 쓰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야말로 첫 줄을 쓰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헤밍웨이의 말처럼 초안은 끔찍하리만큼 형편없어 도무지 내놓을 수가 없다. 도대체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뻔뻔해져야 하는 것일까?
글쓰기는 언제나 어려웠고
가끔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과거 일기 수준의 습작들을 꺼내보며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있다. 도저히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문장들은 마치 헤밍웨이가 말한 '걸레들' 같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매일 걸레 같은 초고들을 쓰고 있다.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당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단순한 단어들로
단순하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라.
- 나탈리 골드버그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쉽고 간결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글이 좋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단순한 언어로 단순하게 시작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쓴 후,
절반으로 줄이고,
제대로 다듬어라.
- 찰스 다윈
과거 중국어 번역 작업을 할 때, 긴 문장을 잘라내는 연습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긴 호흡의 문장을 앞뒤 맥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잘 풀어내는 것 역시 쉽지 않음을 느꼈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단 문장을 길게 풀고, 줄이고, 다듬어야 한다. 경험이 많은 번역가일수록 그 과정이 짧아지겠지만 단번에 잘라내는 건 자칫 오역의 위험이 있다.
작품이 미니멀해질수록
설명은 맥시멈이 된다.
- 힐튼 크레이머
글쓰기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점이 바로 '줄이는 작업' 일 것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글을 쓰기 전 망설임과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은 대체로 내게 독이 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휘갈기고, 줄이고, 다듬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간결하고 분명한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접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수없이 많은 퇴고를 거듭한 결과이다. 작품이 미니멀해져야 설명이 맥시멈 해지는 건 진리이다. 그렇다면 간결하고 분명한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글에서 ‘매우’’무척’등의 단어만 빼도
좋은 글이 완성된다.
- 마크 트웨인
사실 나는 꽤 수다스러운 사람이다. 글을 쓸 때도 나의 그런 면모는 감출 수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내가 쓰는 글은 군더더기투성이다. 심지어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 문장은 길고 난해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 쓰는 것이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아 고역스럽다. 제일 먼저 문장을 자르고 덜어내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중이다.
재개념화, 탈대중화 같은
전문 용어는 허세의 증거일 뿐이다.
- 데이비드 오길비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고,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
반드시 뺀다.
- 조지 오웰
글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단어의 중복 사용이다. 앞에 썼던 단어를 중복 사용할 경우 글의 발란스가 깨지고 만다. 부득이하게 같은 의미를 표현해야 한다면 동의어로 대체해 산뜻한 문장을 쓰도록 하자. 이도저도 어려울 땐 일단 단어를 빼 본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빼는 것이 넣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써봐야 하는 이유는 -퇴고를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내 경우, 그래야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항상 내 앞에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라고 상상해라.
그리고 그 사람이 지루해서
자리를 뜨지 않도록 설명해라.
- 제임스 패터슨
글은 나를 위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결국 독자를 떠나 생각할 수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표현되는 모든 예술은 혼자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즉 글은 작가가 쓰지만 완성은 독자가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소설의 경우가 그럴 텐데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는 건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낯선 사람과 서로 떼를 미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 글이 쓴 것처럼 느껴진다면
다시 써라.
- 엘모어 레너드
글을 쓰다 보면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나에게는 '이 글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을 때' 또는 '언젠가 쓴 것처럼 느껴질 때'가 그렇다. 확인해 보면 심지어 중복된 내용도 있다. 아직 써놓은 글이 많지도 않은데 벌써부터 그러면 나중엔 어쩌려고!
달이 빛난다고 말하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
- 안톤 체호프
말이 필요 없다. 이 순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안톤 체호프의 소름 끼치게 멋진 위의 문장 때문이다. 나는 언제쯤 그들처럼 글로 말하는 작가가 아닌 보여주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매일 글을 써라.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 레이 브래드버리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매일 아침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보자. 참, 글과는 별개로 경제력을 갖춰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 역시 중요하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일은 경쟁에 치여 쫓기지 않도록 하자.
소리 내어 읽어라.
문장들의 리듬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길은
그 방법뿐이다.
산문의 리듬은 너무 복잡하고 미묘해서
머리로는 알아낼 수 없다.
귀로 들어야만 바로잡을 수 있다.
- 다이애나 애실
와우. 나는 비록 글쓰기 내공이 깊지 않지만 글을 쓸 때 소리 내어 읽는 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다.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앞 뒤 문장의 호흡과 발란스를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퇴고할 때 유리하다.
당신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라.
당신보다 더 똑똑하고 우수한 작가들은 많다.
- 닐 게이먼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당신의 의지를 꺾을 의도는 전혀 없지만. 당신보다 더 똑똑하고 우수한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과거 내 글을 보고 자아도취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 정도면 멋지지 않은가 생각한 적도 있다. 공자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是知也)이라고 했다. 과거 나는 내가 아는 것이 다인줄 알았던 것이다. 이런. 또다시 글이 길어지고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종종 검색창에 내가 쓴 표현을 넣어본다. 그럼 어김없이 유사한 표현들이 쏟아져 나온다. 무슨 의미일까? 내가 생각했다면 이미 많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위로가 될 만한 흥미로운 사실은 모르고 내뱉은 말인데 수백 년 전에 역사 속 거장의 명언일 경우도 있다는 점. 그렇다고 우쭐해질 필요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글의 소재와 문장의 표현까지도 어쩌면 온전히 내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글은 결국 이야기이고 종국에는 반드시 나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내야 한다.
하루 온종일 교정 보면서
오전에는 쉼표 하나를 떼어냈고
오후에는 그것을 다시 붙였다.
- 오스카 와일드
비록 방종과 말발로 폭망에 이른 천재작가라고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무척 공감이 간다. 글이 써지는 날에는 쓱쓱 쓰기도 하지만 안 써지는 날에는 오전에 쉼표 하나 오후에 그것을 붙이는 일도 쉽지 않다. 어쩌면 그냥 삭제해 버릴 수도 있다.
글을 쓰는 법을 음악에서 배웠거든요.
음악에서 제일 중요한 건 리듬이죠.
-무라카미 하루키
앞서 말했듯이 글을 소리 내서 읽는 습관이 있는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 아직은 독자로서.
작가의 말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 길다 윌리엄스
위대한 작가의 피드백이라는 글을 시작하며 나는 제일 먼저 헤밍웨이의 6 단어 즉흥 소설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의 울림 있는 문장력에 감탄한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그의 사생활도 떠올랐다. 실제로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 중에는 헤밍웨이처럼 불운의 인생을 살다 간 천재 예술가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위법이 아닌 일탈 행위에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지만 그들의 작품이 대부분 사후에 크게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은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나는 내가 쓰는 글처럼 살고 싶다.
자기 글을 가차 없이 대하라.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그럴 것이다.
- 존 베리먼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는 종종 내 글이 어떤지 궁금하다. 어떤 날은 좀 괜찮게 보이다가도 또 어떤 날은 차마 읽을 수가 없다. 이미 써놓은 글도 삭제해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숨고 숨기다가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글을 공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글쓰기의 욕심은 여전하다. 마치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은 것처럼 내 글을 모두 좋아할 필요는 없다. Never! 내 목표는 소수의 꾸준한 독자가 진심으로 공감하는 글을 쓰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가차 없이 셀프 피드백을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