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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Apr 17. 2024

언어 간섭은 파리채로도 쫓을 수가 없다

나의 제2 언어는 중국어입니다


가능한 한 자주 글을 써라.
그게 출판될 거라는 생각이 아닌,
악기 연주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J.B. 프리슬리-



사실 나의 모국어 실력은 형편없다. 학창 시절 책과 글을 좋아했으니 적어도 대학교 때까지는 쓸만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20여 년 전 나의 뇌 속에 새로운 언어체계가 자리 잡을 때쯤, 나는 점점 모국어에 둔감해졌다. 뜬금없지만 내 남편은 중국인이고 나의 제2 언어는 중국어다. 여기서 제2 언어라는 개념은 외국어와는 좀 차이가 있는데 쉽게 말하면 모국어는 아니지만 실제 가장 많이 쓰이는 생활언어 내지는 환경언어쯤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급부상하던 중국이라는 키워드는 나를 중국학과로 이끌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중국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그렇게 나의 중국 생활은 시작되었다. 종종 "어떻게 중국인과 결혼하게 되었나요?"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나는 결혼적령기에 수년동안 중국에 살았고 삶에 열정적이었노라고 말이다.


유학생활을 할 때 한국 유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면 현지 언어와 문화를 습득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나는 당시 장학금을 받는 가난한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쉽게 말해 놀 시간이 없었다. 오직 중국어만 사용하고 중국 친구와 사귀며 심지어 나는 중국어로 잠꼬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중국인과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언어 간섭'은 내가 예상하지 못 한 복병이었다. 나는 이미 성인이 되어 중국에 왔기 때문에 당연히 모국어가 퇴보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사람들 틈에서 중국어로 생활하면서 나는 점차 한국어가 어색하게 느껴졌고 종종 한국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으며 버퍼링이 걸려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머릿속에 퍼즐처럼 흩어지는 단어들을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세상에. 나의 모국어인데 말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해도 '그게 뭐?'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솔직히 내가 그들을 충분히 이해시킬 자신은 없으나 지금부터 언어 간섭이라는 재미난 개념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혹, 모국어 간섭이란 말을 들어봤을까? 모국어 간섭이란 두뇌가 모국어의 어휘, 문법체계를 계속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일종의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타 언어의 통사체계(어휘, 문법체계)를 흡수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자꾸 한국어가 튀어나오는 현상인데 내게는 반대로 한국어를 써야 할 때 자꾸 중국어가 튀어나오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이를 '언어 간섭'이라고 한다. 일시적인 모국어 퇴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간혹 미국서 좀 살다왔다는 사람이 툭하면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좀 과장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단 몇 개월만 미국에서 살다와도 언어 간섭이 생긴다. 보통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제 자리를 찾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나는 한국어를 모르는 중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어 환경이 아닌 중국 호텔에서 10년을 근무했다. 그럼,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5개 국어가 가능하다는 건 다섯 개의 언어를 모두 모국어처럼 사용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중 메인 언어가 있을 것이고 메인 언어는 끊임없이 언어 간섭을 받을 수 있다. 단, 일본어처럼 발음, 어휘 및 문법체계가 유사한 경우라면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에겐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 비록 중국어는 나날이 유창해졌지만 점차 동시통역이 불가능할 정도로 언어 간섭이 심해졌다. 중국에도 각 도시에 유독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코리아 타운이 있지만 나는 열외였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탓도 있다. 게다가 한국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조차도 나는 자꾸 한국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는 나쁜 버릇이 생겨버렸다.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아서 카톡을 쓸 수 없었던 몇 년 나는 오로지 중국 위챗을 통해 소통했고 혼잣말도 중국어로 중얼거렸다. 심지어 반려견과도 중국어로 대화했다. (참고로 우리 집 롱롱이는 2개 국어가 가능하다.) 한국어 책도 구하기 번거로워 중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읽고 딸아이와도 주로 중국어로 소통했다. 다시 한국어 소설을 찾아 읽고 한국어로 일기를 쓰고 언어를 섞어 쓰지 않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 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블로그를 시작한 2019년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중국어도 모국어 수준은 안 된다는 점이다. 이쯤에서 억울한 내 마음을 누군가 공감해 주면 참 좋을 텐데! 그나마 나는 중국 현지 호텔에서 근무하며 갈고닦은 중국어 실력이 나쁘진 않은데 말이다. 이는 인지 또는 언어기능의 문제가 아닌 기억의 문제였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어릴 때부터 입력된 언어정보는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마치 내가 한국어를 아무리 버벅거려도 곧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장기기억은 소환(recall)해 낼 수 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저장된 중국어 정보는 20세 이후의 것들 뿐이다. 나는 성인이 된 후 비로소 중국어를 접했다. 그러니 중국인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익히는 중국의 관습, 문화 또는 시대 언어들은 학습한 경험이 없는 것이다. 설명이 충분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국어 간섭 현상 때문에 좋은 점도 몇 가지 있다. 과거에 비해 단어와 문장에 대한 민감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한국어 단어가 자꾸 떠오르지 않아서 글을 쓸 때 적합한 단어 사용을 위해 나는 사전을 자주 사용한다. 비록 집중이 잘 안 되고 버퍼링이 걸릴 땐 쉬운 단어조차도 생각나지 않지만 나의 강점은 유사한 단어의 차이점을 꽤 잘 짚어내고 어색한 조합을 빠르게 발견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단어 사용에 있어서 굉장히 까탈스럽다. 아마도 오랜 언어 간섭으로 잠식된 나의 뇌가 가동되는데 시간이 좀 걸리나보다.


나의 빈약한 문장력을 변명하기 위해 내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나는 네이버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검색해 가며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버퍼링이 심해져서 글쓰기를 내려놓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교포말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지금도 사실 버퍼링이라는 단어가 탐탁지 않지만 대체할만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덕분에 내 글은 제법 정성스럽지만 반면 힘이 들어가 있다고 느낀다.


나는 아직도 사춘기 때 읽었던 한국 근대 소설의 주옥같던 문장들을 기억한다. 악기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하루하루 글을 쌓다 보면 나도 어느새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언어 간섭은 정말이지 파리가 윙윙 귓가를 맴도는 것만큼이나 짜증스럽고 답답하다. 나는 이렇게 언어 간섭을 극복하는 중이다. 가끔 교포 문체로 인사해도 놀라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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