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즐겨봤던 JTBC 드라마 ‘우리, 사랑했을까’, 14회분에서 배우 송지효가 극 중 딸 하늬를 껴안고 우는 장면이 있다. 이어 ‘애정아! (극 중 송지효 이름)’ 하고 울먹이며 애정의 노모가 병실을 찾았고 그녀도 기다렸다는 듯 ‘엄마’를 외치며 눈물을 쏟는다. 딸아이 앞에서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던 '또 다른 엄마'. 왠지 그 장면은 오랜 시간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밀려온 그리움이 있다. 나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짧은 찰나에도, 나는 이 한마디에 목이 멘다. 나도 내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그 사실조차 믿기지 않아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곁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며 새삼 놀라곤 했었다. 아이가 처음 40도의 열을 이겨내고 열꽃을 피웠을 때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작은 생명을 제가 맡아서 잘 키우겠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면서 아프거나 다칠 때마다 나는 내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나처럼 마음이 아팠겠지. 대신 아파주고 싶었겠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종종 나를 힘들게 할 때면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 나도 어렸을 때 엄마 속 많이 썩였나?’라고 묻곤 했었다.
딸아이는 그렇게 나만큼 키가 자랐고 이제는 사춘기라며 종종 말대꾸를 하는데 어쩜 아픈 말만 쏙 쏙 잘도 골라한다. ‘나도 그랬나.’ 하는 물음에 엄마는 늘 대답한다. ‘우리 딸은 엄마한테 많이 혼났지. 그래서 엄마가 미안하지’라고. 그랬구나. 그리고 어느 날 아이를 호되게 꾸짖고 난 날이면 나도 혼잣말로 속삭인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어른인데. 엄마가 잘 참았어야 했는데.’
엄마는 나에 대해 좋은 것만 기억한다. 진통의 고통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아프게 한 사람, 생활고의 쓰라림도, 어쩌면 속사포처럼 쏟아내던 나의 독설도.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엄마는 나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 말한다.
아가, 네가 어른이 되면 나도 네 할머니 같을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기억해 주렴.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 너를 낳고 호되게 젖몸살을 하던 나를 손녀인 너보다 더 많이 아껴주던,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