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즈음 집에 호접란을 들였다. 꽃을 피운 채로 반년 내내 싱그러움을 자랑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올해 초에는 피운 꽃을 두 달이 채 안돼서 떨어트렸다. 그러려니 하고 그렇게 힐끔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 벌써 일주일 전이다. 나쁜 과거 버릇이 돌아왔다.
나는 사실 식물에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름시름 말라가는 화분을 바라보며 '내가 너무 바빠서'라고 외면하기 일쑤였다. 죽으면 다시 사면 그만이었다. 내가 더 죽겠는데 뭘. 사람도 아닌데 뭘. 우리 집에서 그렇게 무수한 꽃들이 생을 마감했다. 어떻게 시들어가는 녀석들을 바라보고도 물 한 모금 안 줄 수 있었을까? 냉정함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진다.
내가 처음 들인 화분은 키우기 쉽다는 칼랑코에와 산세베리아 그리고 스킨답서스 종류였다. 물을 많이 먹거나 거의 안 먹는 그런 아이들. 마치 일희일비하던 나의 성격과도 유사했다. 칼랑코에와 스킨답서스는 물을 주는 데로 먹었다. 녀석들은 도무지 적당히를 몰랐다. 처음 피운 칼랑코에 꽃들에 감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무서운 번식력을 자랑하던 녀석은 좁은 집을 정원으로 만들 셈이었고 왕성한 식욕의 스킨답서스들은 있는 데로 물을 쪽쪽 빨아들이고 있었다. 산세베리아는 마치 천년의 미라처럼 한 구석을 자리하고 한 달 내내 물을 주지 않아도 죽지 않았다. 소름이 끼쳤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집에 화분 하나 없으면 어떠한가. 녀석들과 나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나는 집에 머물게 되었다. 세상이 변하니 나도 변했다. 겪리 된 한 때 심지어 상추와 청경채를 심고 가꿔서 식탁에 올리기도 했다. 어느새 친구들이 나를 금손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 화분에 뿌리내린 식물들은 걱정 없는 유년을 보낼 수 있었고 열매를 맺고 수확을 통해 충분히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 채소를 키우던 나는 점차 다양한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고 점점 더 식물이 좋아졌다. 드디어 우리집의 그네들도 한 해 살이를 벗어날 수 있었다. 코로나가 뭐라고. 사람이 병드니 식물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난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안방 베란다에는 내가 좋아하는 난꽃을 거실 베란다에는 칼랑코에와 스킨답서스 등 방정맞은 녀석들을 거두기로 했다. 서둘러 피어나 어느새 져버리는 꽃들 말고 힘겹게 피워도 오래 향을 나눠줄 난꽃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처음 들인 아이는 서양란의 여왕으로 불리는 카틀레야와 이름도 판타스틱한 온시디움 환타지아였다. 카틀레야의 꽃말은 '우아함', 온시디움의 꽃말은 '순박함' 이였는데 각각 꽃잎만 봐도 이를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어울렸다.
우리 집에 들인 서양란들은 물도 우아하게 마셨다. 5~7일, 가을과 겨울 더 길게는 보름동안 물을 주지 않아도 싱그러움을 유지했고 한 번 물을 줄 때는 듬뿍 온몸을 물속에 담가둔 채로 반신욕을 시켜줬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더 이상 녀석들이라고 부르지 않으련다. 그녀들은 꽃대를 좀처럼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한 번 꽃망울을 피울 때마다 마치 산통을 겪는 산모처럼 며칠 몇 날 나를 애태웠다. 모르긴 해도 몽글몽글 잘 여문 꽃망울은 모두 잠든 한 밤중에야 비로소 꽃을 피워내는 것 같았다. 꽃을 피우는 전 후로는 분갈이도 불가했는데 예민할 데로 예민해진 그녀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양란의 왕이라는 호접란은 다시 꽃을 피우기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다만 피운 꽃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선물용으로 자주 쓰이지만 마치 유통기한이 다한 꽃다발처럼 꽃이 지면 쓰레기통에 버려지기가 일쑤다. 카틀레야와 온디시움을 키우면서 자신감이 붙었던 나는 지난해 호기롭게 호접란 하나를 집에 들이게 되었다.
우리 집에 온 호접란이 어땠는지 이야기해 주고 싶다. 녀석은 정-말 예뻤다. 화려한 꽃을 피운 채로 약 6개월 흐트러짐 없이 내내 그 위엄을 자랑했다. 그러다 첫 꽃잎이 떨어지던 어느 날, 나는 다짐했다. 다시 꽃을 피우게 해 주겠노라고.
정성 들여 가꾼 덕에 다음 해 녀석은 기꺼이 꽃대를 내주었다. 호접란은 처음이라 꽃대를 보고 반가운 나머지지지대를 놓아주다가 그만 실수로 꽃대를 부러트리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반쯤 남은 꽃대를 포기하지 않고 지지대로 받쳐주기를 며칠째. 미동도 없던 녀석이 내게 기적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툭 부러진 꽃대 옆으로 새로운 꽃대가 나오는 게 아닌가!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꽃대가 꺾이고 난 후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못 미덥다 여긴 건 아닐까. 며칠 째 토라져있던 호접란은 그제야 수줍게 꽃대를 내어주었다.
아주 잠시 정체기를 가졌던 호접란의 꽃대에도 이어 꽃봉오리가 맺혔다. 가냘픈 꽃대가 몽글몽글 제법 무게감 있어 보이는 꽃봉오리를 잘도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꽃봉오리를 맺더니 어느 날 아침, 나는 녀석의 첫 번째 꽃을 볼 수 있었다.
과거 나는 꽃이 스스로 아름다운 줄만 알았다. 그런데 꽃을 피우던 전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꽃을 피우는 건 꽃 혼자만의 노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 년 내내 영양분을 비축하고 꽃 피울 준비를 하던 호접란은 가냘픈 꽃대를 꼿꼿이 세우고 꽃망울을 맺는다. 꽃망울이 여무는 동안 호접란의 파란 잎사귀는 마치 저장했던 양분을 나누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짝 마르기 시작하고 수일의 진통이 끝나야 비로소 꽃은 모습을 드러낸다. 정말 대견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그 아이가 이상하다. 이번에는 꽃을 한 달도 채 피우지 못한 채 떨구고 말았다. 무슨 일일까? 별일 없을 거라고 며칠은 지나쳤는데. 나는 우연히 화분 받침에 고여있는 물을 발견했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화분을 뒤집어 보니 녀석의 뿌리가 통째로 썩고 있었다. 호접란이 죽어가고 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황급해진 나는 그제야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간 정성껏 키웠다는 이유로 그저 잘 자라 줄거라 믿었던 내가 무모하게 느껴졌다. 그 흔한 식물도감 책 한 권 찾아볼 생각도 못했던 게으른 나를 자책했다. 그저 보기 좋은 꽃 피우기에 급급했던 내 안에 욕망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알고 보니 난꽃은 일반 토양에 심는 것도 아니란다. 아이들의 뿌리가 썩지 않고 탈없이 잘 자라준 건 숨이 고른 화분 덕분이었다. 결국 나는 서둘러 수태를 마련해 분갈이를 시작했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다들 파릇파릇 제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지했던 나를 용서해 주기를. 나는 올 가을에 만날 그녀들을 떠올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