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배우다
창작 글쓰기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면 그만이라고. 물론 나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자유롭기 이전에 글쓰기의 기본을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미성년자의 자녀에게 '방목'을 허용하되 '방치'는 지양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글쓰기의 기초를 닦는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나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노파심에 말해둘 것은 창의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기초 학습을 말한다.
드럼 연주를 시작으로 딸아이는 타악기의 세계로 들어섰다. 과거 아이가 연주한 곡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Dave Weckl의 <Access Denied>이라는 곡으로 재즈 퓨전 연주곡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징글벨>로 드럼 입문, 2학년 때 원더걸즈 <Nobody>로 드럼 스틱을 휘날리고, 3학년 때 드디어 재즈 퓨전 연주곡에 도전하면서 전국대회에 참가해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그즈음 우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드럼의 기초는 스네어드럼이라는 점이었다.
스네어 드럼은 드럼 셋의 일부이긴 하지만 클래식 타악기에서는 독립적인 악기로 연주가 가능하다. 즉 클래식 기본을 잘 닦으면 얼마든지 다양한 드럼 연주가 가능하지만 스네어 드럼 기초가 없이는 드럼 연주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드럼 세트와는 달리 스네어 드럼 연습곡들은 매우 지루하기 때문에 꾸준히 연습하여 기본기를 닦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심지어 드럼 스틱을 잡는 방법부터 손목을 쓰는 방법도 다르다. 피아노로 치면 하농과 비슷할까? 이해를 돕기 위해 스네어 드럼과 드럼 세트의 차이를 클래식 피아노와 밴드 건반으로 설명해도 무리가 없겠다.
실제로 아이의 선생님은 두 방향으로 갈렸다. 한 부류는 대학에서 클래식 타악기를 전공한 후 드럼을 가르치는 선생님, 또 한 부류는 오로지 드럼 세트 연주만으로 락, 대중음악 또는 재즈 퓨전을 연주하시는 분들이었다. 다만 후자 중 재즈 퓨전을 멋지게 소화하는 연주자는 대부분 다시 스네어드럼을 체계적으로 배운 케이스가 많았다. 당시 아이의 선생님 중 한 분은 "젊었을 때 드럼 세트 연주를 하다가 재즈를 접하면서 한계가 왔다. 그때 다시 0 기초로 돌아가 3배의 시간을 들여 스네어 드럼을 연습했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그 길로 드럼 세트를 내려놓고 스네어 드럼, 마림바 등 클래식 타악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차근차근 음악 이론과 기초를 쌓게 되었다. 음악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취미로써의 드럼을 배웠다면 그리할 이유는 없었겠다. 그렇게 예중에 입학해 클래식으로 기초를 닦은 아이는 점차 클래식을 벗어날 궁리를 한다. 만약 순서를 정한다면 클래식 다음이 실용음악(대중음악)이어야 한다는 아이의 생각이다. 물론 이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클래식과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니 말이다. 이와 관련해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고루 섭렵하게 된다면 아이의 생각도 부단히 진화하지 않을까?
클래식과 글쓰기를 연결해 보았다. 클래식은 우리가 말하는 고전이다. 글쓰기에도 고전이 있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건 내가 주장하는 건 결코 고전적 글쓰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클래식 다음의 실용음악이라는 맥락처럼 먼저 고전을 알고 창작글을 쓰는 것이 좋으리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때 중요한 건 고전에 감탄하고 스며들어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문학 형식에 도전하는 실험정신이 필요하다는 점이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문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쓰기의 기본을 이야기하면서 음악 이야기로 빠질 줄 몰랐지만 이 글을 쓰며 나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비단 글쓰기와 음악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모든 학문이 그렇지 않을까? 어떤 분야든 근원을 따라가 그 역사를 더듬고 기본을 닦는 과정은 필요하리라 본다. 다만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건 '고인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충분히 호기심을 갖고 과거로의 탐험을 즐기되 현재에 머물고 미래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비록 여전히 미흡하지만 나의 궁극적인 글쓰기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