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보드라운 구름 사이
봄바람 불던 날
대지에 내려앉은 꽃씨는
이름 모를 풀잎이 되었다.
한가로운 햇살과
분주한 풀벌레 소리
어느새 높이 뻗은 가지가
기지개를 켠다.
해가 지고 밤이 오길
여러 날이 계속되니
나무의 가지는 굵어지고
나무의 뿌리는 깊어졌다.
여름 한 낮 장대비
대차게 쏟아지고
나무는 대롱대롱
탐스러운 열매를 낳는다.
사각사각 가을 지나
앙상한 가지 위로
소복이 눈 쌓이니
비로소 나무가 속삭인다.
은혜로운 대지 위에
초록의 싹을 틔운 것은
내가 계획한 일이 아니며
한여름 폭풍우 지나고
알알이 맺은 열매도
모두 내 것이 아니라고
그저 열매를 사랑하는 것만이
나무의 사명이었다고
소리 없이 나무는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