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투사적 동일시
episode 1.
엄마 나는 커서
엄마랑 똑같은 사람이 될 거야.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고
엄마가 울면 나도 울 거야.
엄마가 밥 먹으면 나도 밥 먹고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을 거야.
episode 2.
엄마 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
엄마가 피아노를 칠 때 자랑스럽고,
엄마가 노래를 부를 때도 자랑스러워.
엄마가 내 친구들한테 친절할 때도 자랑스러워.
episode 3.
한 번은 요구르트를 하나 더 먹으려고 하길래,
제가 "그럼, 엄마가 요구르트를 하나 더
줘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말해봐"하니까.
첫째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둘째 나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셋째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라고 말하더라고요.
episode 4.
저희 집 아이는 '잘못했어요'라는 말보다는
'지금부터 잘할게요'란 말을 잘하고,
'못하겠어요'라는 말보다는
'해볼게요'란 말을 잘해요.
한 번은 제가 어떤 걸 친구보다 못하는
것에 대해서 질투 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건 그 친구가 배워서 그런 거고
난 배우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고,
'잘하는 것보다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지'
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뿌듯했습니다.
다 제가 알려준 거니까요.
위의 대화는 저희 딸아이가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제가 메모해 놓은 건데요. 언듯 보면 저는 꽤 좋은 엄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대화를 들여다보면 제가 이상화된 자아상을 아이에게 끊임없이 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의 투사적 동일시라고 하지요. 사실 위의 대화만으로는 과민한 판단일 수 있지만 그 밖에도 많은 스토리가 있음을 저는 아니까요. 저는 비록 아이에게 학벌과 경제력을 중시하는 등 세상적 요구는 하지 않았지만 도덕적 잣대가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대체적으로 민주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릴 때부터 충분히 친구들과 뛰놀고 하고자 하는 꿈도 빨리 찾은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놓친 부분은 바로 저의 높은 양심적 기준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부모의 형태는 아니었기에 저도 빨리 알아챌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저에게 했던 고백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저에게 '성모마리아'라고 종종 놀렸는데 이해가 되실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도덕적 기준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내가 더 손해 보고 살아야 하고 베풀어야 한다'라고 교육받았습니다. 학창시절 한참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에는 더더욱 저는 '착한 아이'로 보였을 겁니다. 물론 내심은 그렇지 않았겠죠. 저는 늘 '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뒤늦게 공부에 열정이 생겼고 첫사랑도 경험하면서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더 이상 '착한 아이' 소리를 듣지 않아도 살 것 같았습니다. 돌아보면 그때부터 제 인생이 많이 달라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착한 아이'라는 말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스스로에게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과는 달리 저의 과거는 자꾸만 아이를 '착한 아이'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예외적이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과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 두 가지였습니다. 제가 과거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부분은 놀랍게도 '착한 아이'가 되는 것과는 정면충돌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어른이었고 제가 발견한 두 지점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이미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기에 나를 소모하지 않고도 타인과 잘 지내는 것이 어느정도 가능했지만 어린아이에게는 혼란스러운 과제였던 것이죠. 저는 아이를 도덕적 틀 안에 가두고 자유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부모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자녀에게 투사하여 아이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시키는 전형적인 예였습니다.
사춘기가 올 때 즈음 아이가 먼저 저에게 '이중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적반하장으로 저는 처음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 인정하게 되었을 때에는 꽤 충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지난 일기장을 보니 심지어 저도 이미 제 이중 메시지를 인식하고 있었더군요. 소름이 끼쳤습니다. 도덕적 교육적 기준으로 더없이 '좋은 것'도 아이가 원하지 않을 땐 기다려줘야 했으나 저는 지나치게 솔선수범 교육하고 설득했던 것이죠. 때때로 엄마의 선행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저는 '선'과 '성실' 그리고 '사랑'을 조용히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제 경우 사춘기 아이의 반항 덕분에 너무 늦지 않게 이 점을 깨달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아이와 교감했던 일기와 메모를 볼 때면 종종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냥 모르고 평생 살았을 수도 있었을까요?
대화 속 아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지 저는 이제야 보입니다. 당시 저는 얼마나 아이를 평가했는지, 아이를 통해 '우수한 성적표'를 받고 싶어 했는지 이 또한 보입니다. 다른 엄마들이 바라는 성적표와 다른 것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던 것도 오류였습니다. 마치 국영수 못해도 도덕 점수만 잘 받아오면 된다와 같았던 거죠. 단 도덕도 과목이고 성적으로 치부하고 있었던거죠. 부끄러울 일이었습니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고 민감한 아이 덕에 저도 많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꽤 괜찮은 부모라고 생각할 경우 오히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이럴 땐 차라리 저 어릴 때처럼 '막 자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물론 그랬다면 애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을까요? 금기는 과잉을 부르고 과잉 열망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음을. 방치가 아닌 드넓은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방목하며 관찰하되 관여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어려움을. 배웠습니다. 자책의 시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그저 한 인간으로써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