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린

by 바람결

눈이 나렸다. 어둠만이 자리한 세상에,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눈은 황홀히 낙하한다. 때론 꽃잎처럼, 때론 깃털처럼. 고요함 속에 자유로이 흩날리며 새까만 세상에 자신만의 색을 덮어낸다.


차가운 공기조차 벅찬 숨결을 하얀 입김으로 보여줄 뿐, 이 순간의 감동을 지워내지 못한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운명이 선물한 나만을 위한 극(劇). 그렇게 '나의 겨울' 하면 다시금 떠올릴, 새로운 풍경이 새겨졌다.


이렇듯 별다를 것 없는 하루에, 신비가 곁들여지는 때가 있다. 그저 늘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 다를 것 없는 나일지라도, 갑작스레 나만을 위해 펼쳐지는, 가장 아름다운 동화들이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가장 지루한 순간에, 오늘도 눈이 나렸다.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더욱 찬란한, 지루한 회색빛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뜬금없이 나타나는 총천연색의 삽화들. 삶은 우리 몰래, 작은 선물들을 곳곳에 숨겨두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그 삽화가 나올 때까지 책을 덮지 않는 것뿐이다.


겨울이니, 눈을 또 기다려볼까. 내일은, 혹은 그다음 날은 눈이 오려나. 또 어떤 풍경이 나의 겨울을 장식할까. 우연히 마주칠 진눈깨비일까,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일까, 아니면 어제처럼 쏟아지는 눈송이의 춤일까.


분명한 건, 아직 겨울 동화에는 뒷이야기가 남아있으리라. 팍팍한 현실 틈새로 비집고 들어올 그 낭만을 믿기에, 나는 오늘도 기꺼이 평범한 하루를 사랑할 수 있다. 이다음 페이지에는 분명, 또 다른 설렘이 적혀있을 테니까.


내일도, 눈이 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