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인류애는 지쳤을 뿐

by 바람결

현대인은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길거리의 행인부터 카페의 알바생까지, 무관심이 미덕이 된 세상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어딘가 서늘한 태도뿐이다. 길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싸늘한 눈빛을 띠고 경계한다. 피자집의 사장님은 손님을 응대할 때 지친 듯 지겨운 듯 건조한 어조를 띤다. 헬스장의 직원은 회원들의 질문에 지쳤는지, 짜증 섞인 투로 규칙을 설명한다. 이제 사회에서 타인과의 소통은 반가운 일은 아닌 듯하다.


이 이기(利己)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대체 얼마나 지친 걸까. 자본의 그림자는 짙다. 호의를 이용하여 제 배를 불리든, 탐욕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든. 그 모든 행위의 결과만을 비춘다.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 능력으로 포장되는 세상, 신뢰와 선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젠 모든 행위에 '가격'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 어떤 재화와 서비스에도 서로를 위해 남겨진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돈을 줬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혹은, '내가 이걸 해줬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지'. 오차 하나 없는 완벽한 등가교환. 음식에 담겼던 정성, 거래처에 대한 신뢰, 상호 간에 손해는 끼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모두 멸종위기에 처했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가격이 싸면 싼 대로 걱정해야 하고, 가격이 비싸면 비싼 대로 의심해야 하는. 뭐 하나 믿을 곳 없이 모든 것을 돈으로 지불하거나 스스로 해내야 하는 세상이, 얼마나 가혹하겠는가. 믿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돈 없인 빈곤한 세상에, 인류애가 머물 자리는 없다.


그럼에도, 돌아와라.

길거리 행인을 무심히 지나치곤, 나는 괜스레 말은 들어볼 걸 후회했다. 피자집 사장님은 그리도 진상이라며 투덜대면서도, 키오스크를 못쓰는 손님들을 모두 직접 도와드렸다. 헬스장의 직원은 권위 섞인 어투로 말해놓고는, 몇 분 후 미안함이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니 그대여, 돌아와라.

이 단단한 가면 속에 숨겨진, 여리고 미약한 호의를 보여주마.

신뢰, 선의 따위가 사라져 가는 세상에, 미련하게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 인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