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성숙하다는 말을 듣는다. 참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나와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면서 어떻게 성숙하다는 말을 하는 걸까. 물론 성숙함이라는 건 꽤나 기분 좋은 표현이다. 솔직히 가끔은 우쭐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스스로는 납득이 되질 않았다. 이렇게 우쭐하는 모습조차, 내가 생각하는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친구들도 이런 나를 잘 알고 있다. 정말 친한 몇몇은 대놓고 내가 너무 우쭐해한다며, 자아가 비대하다며 조금 아프게 놀리기도 한다. 또 그들은 나의 미숙함을 정말 잘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술에 취약한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들을 이미 들추어 본 지 오래다.
이 지점에서 내가 성숙함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성숙함은 '미숙하지 않다'가 아니라, '미숙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내 미숙한 점을 부정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술에 휩쓸려 사고를 쳤을 때도, 편견이 앞서서, 자기 방어적인 태도 때문에 다른 사람을 상처 줬을 때도 다른 핑계를 대지는 않는다. 나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려 노력한다. 나는 적어도, 그 창피함을 감내할 작은 용기만은 가지고 있다.
이런 태도를 친구들은 좋게 봐주는 것 같다. 미숙하고 못났지만, 창피함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조금이라도, 조금씩이라도 사과하려 작은 용기를 내는. 미운 감정은 원망이 되어 쌓이고,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그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남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위해 남들이 나를 미워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오늘도 나는, 내 취약함이 남긴 과거의 흉터들을 감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숙은 익을 숙(熟) 자를 쓴다. 모든 과일이 고루 예쁘게 익겠는가. 어디는 덜 익고, 어디는 너무 익어 갈변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는 잘하면서도, 다른 건 미숙할 수 있고, 어떤 건 너무 익어 오만해지거나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어쩌면 성숙함이란 이런 우리의 덜 익은 곳을, 우리의 갈변한 부분을 인정해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진정한 어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