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쬐는 것은 결국 나다

by 바람결

겨울 햇빛은 여름의 그것과 사뭇 다르게 눈이 부시다. 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림’이라는 표현처럼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위압적인 존재감을 뽐낸다면, 겨울 햇빛은 ‘빛난다’는 말에 걸맞게 안온한 모습으로 우리를 내리쬔다. 그래서일까. 이 계절에 나는 비로소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조금 눈을 찌푸릴 뿐, 그 온기를 담은 빛을 한 방울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 애쓰게 된다.


빛의 색깔도 다르다. 과학적인 근거는 차치하더라도, 겨울의 햇빛은 보다 따스하고 포근한 빛깔을 머금고 있다. 샛노랑과 노을색이 뒤섞인 듯한, 무정한 도시 속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찬란한 색조다.

특히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노을이라기엔 밝고 한낮이라기엔 따뜻한 그 찰나의 순간을 요즘 나는 깊이 즐기고 있다.


나는 이 차이가 결국 ‘정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에는 해가 떠 있는 시간도 길고 빛의 강도도 세다. 과잉된 에너지는 소중함을 가린다. 우리는 뜨거운 볕을 피해 그늘을 찾고, 차가운 에어컨 바람 뒤로 숨기 바쁘다. 반대로 겨울에는 해가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고 빛의 세기도 약해진다. 결핍이 시작될 때야 비로소 우리는 햇빛 속의 온기를 발견하고, 그 시간을 간절히 소중히 여긴다.


세상 모든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 삶에는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정도’가 있다. 무언가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맞는 최적의 거리를 찾아야 한다. 나에게 햇빛은 겨울철 오후 4시라는 그 짧고 희미한 순간일 때, 비로소 온전한 즐거움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마주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조건 밀어낼 필요는 없다. 지금 느끼는 괴로움은 그 대상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겪고 있는 ‘정도’가 적절하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현상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모든 것을 ‘나만의 정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틀로 바라보면, 인생은 조금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내가 그 거리를 조절하면 된다. 그 사람이나 상황이 나와 절대 섞일 수 없는 악연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타래 속에서도 관계의 다이얼을 돌리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적절한 온도는 남이 맞춰주지 않는다. 스스로 변화의 중심이 될 때, 진정한 구원과 발전은 나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결국 햇빛을 쬐는 건 나라는 걸 잊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