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빙상장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빙상장의 차갑고 눅눅한 공기가 괜스레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게 익숙한 손길로 장비를 챙겨 신고, 개장 직후의 미끌거리는 빙판 위에 몸을 실었다.
스케이트는 '활주'라는 단어를 쓴다. 참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단순히 '타다'라는 단어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얼음을 박차며 시원하게 나아가는 그 특유의 속도감. 그 순간만큼은 정말 얼음 위를 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 거침없는 속도감을 사랑한다.
그런데 스케이트를 오래 타다 보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흠집이 빙판에 새겨져 자유롭게 속도를 내기 힘들어지는 때가 온다. 그때부턴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 속도를 줄여 다른 재미를 찾으며 스케이트를 즐긴다. 굳이 속도를 내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괜히 그 거친 빙판을 다시 달리려 했다가는, 수많은 흔적들에 이리저리 흔들려 속도를 내기는커녕 넘어져 버릴 것이다. 이럴 땐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주변을 관찰하며 조금 쉬는 게 답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변했다면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삶의 변화를 맞이할 때 내 속도를 잃을까 불안해하곤 한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뒤처지면 안 되는데. 더 앞으로 가야 하는데. 나의 '속도'를 잃을까 봐, 주변을 살펴보질 못한다. 결국엔 깊은 틈에 걸려 넘어져 버린다. 평소엔 당연히 알아차렸을, 불안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한 틈에 걸려 나자빠진다.
가끔은 스스로 속도를 늦출 수 있어야 한다. 점점 거칠어지는 빙판을 무시하지 말고, 속도를 내기 위해 앞만 보던 시선을 내려 달라진 빙질을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변화한 환경을 무시하는 건 오만이고 만용이다. 건강이 안 좋아졌는데 더 성공하기 위해 속도만 낼 것인가? 우리에겐 객기와 끈기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 내 속도를 스스로의 힘만으로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이제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시원한 공기를 맞아보자. 속도감은 조금 줄겠지만, 대신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맞는 것도,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꽤나 사랑할 만할 것이다.